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식목일과 한식날 배꽃

김창집 2016. 4. 5. 08:30

 

어제 모처럼 비가 개어

마실 다녀올 일 있어

골목길을 걷다가

무언가 환한 느낌이 들어

다가서 보니

배꽃이었다.

 

그렇게 봄의 화신은

우리 곁을 서둘러 떠나려 하고 있다.

 

오늘은 식목일이자 한식,

재선충으로 소나무 베어낸 자리에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도당국에서는 손을 놓고

재선충 허위공문서 작성 공무원에

벌금형을 내렸다는 뉴스만 요란하다.

 

오늘 하루

한식(寒食)과 관련해

개자추(介子推)와 진나라 문공(文公)의

고사(古事)를 반추하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 나무심기 - 문효치

 

녹슬어 누워 있는

삽의 날을 세운다.

 

추운 창고 속에 갇혀

야윈 뿌리,

함께 누워 잠든

나무도 불러 깨운다.

 

삽 끝에 묻어 올라오는

흙의 두꺼운 껍질을 헤집고

나무를 심는다.

 

흙속에 땀을 섞어

뿌리를 묻는다.

 

물처럼 계절이 흐르면

나무는 내 땀을 길어 올리며 자라고

그이는 와서 열매를 따리라.

 

붉게 익어 터지는

사랑을 따리라.

 

오늘은 나무를 심는다

따스하게 파헤쳐지는 흙 구덩이에

내 살점을 뚝뚝 떼어 섞으며

나무를 심는다

   

 

♧ 나무 심기 - 강정식

 

묘판에 정강이까지 깊이 박고 서서

튼튼히 자랐지요

바람만 불고 나비는 아직 없던 날

나는 싫다고 졸라 댔지만

뽑혀서 맨발로 묶여 왔습니다

졸업은 했어도 취직은 불가능했어요

차에서 한꺼번에

어느 앞마당에 수북이 부려져

즉결 재판소에 끌려간 시국 사범들처럼

새끼줄에 줄줄이 묶인 채 앉아 기다렸습니다

까다롭게 고르다가

그냥 가 버리곤 하더군요

며칠씩 물 한 모금 못 얻어먹었지만

견디어야 했어요

제대 후에도 이력서를 들고

이곳 저곳 찾아다녀 보았지만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그러다 말라죽을 뻔했거든요

어린 나무를 심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어머니가 안마당에 심은 감나무도

그래서 아직 감이 잘 안 열리나 봐요

아직 젊으니까 기다리면 기회가 오겠지요

   

 

♧ 어느 식목일에 - 姜大實

 

산은 계곡까지 내려와

바람의 족적을 우려내고

 

바위는 마루에 꿇어앉아

무욕을 채우고 있었다

 

긴 그림자 어정거리자

노송이 눈길을 흘리다

 

利己의 싹 밟을 수 있다면

풀씨나 한 알 품어 보란다.  

 

 

♧ 한식날 - 신석종

 

밤새 바람 불며

세차게 내리던 비가

희한하게 새벽에 그쳤어요

아부지, 고맙습니다

 

오늘, 한식날

할아부지 할머니 곁으로

아부지 모시고 가려고

저희가 왔습니다

 

오랫동안 외로우셨을

작은 밤나무골에는, 지금

새벽안개가 걷히고 있구요

꽃들이 지천으료 폈습니다

그래도 떠나셔야 합니다

 

저도, 여지껏

좀 적적하게 살아보니까

외로움은 독한 병이 되더이다

할아부지 할머니 누워 계시는

바래산으로 가시자구요

 

그리고 아부지,

올해는 막내 호종이가

착하고 심성 고은 여자 만나서

꼭 새장가 가게 해 주세요

걔, 홀아비 됐거든요

   

 

♧ 한식 - 장진숙

 

나주 선산

잡풀 우거진 오솔길 지나

줄지어 오르는 비탈이 세월처럼 가파르다

아주 오래 전에 흙으로 돌아가신 진주 강씨 조상님네들

반갑다고 참꽃 흐드러지게 피워 마중하는 날

서울에서 나주만큼이나 멀고 서먹한 일가붙이들

군데군데 상석 위의 젯상이 차려지는 동안

서로의 안부로 이리저리 어지럽다

무덤 앞, 향로에 한숨처럼 향은 피어오르고

담배 한가치 불붙여 올리자

가랑잎처럼 바스락거리던 소란들이 아연

숨죽여 가라앉는다. 머리 허연 광주 당숙이

옷깃을 여미고 술잔을 올릴 때 그간의

어지러운 속사정을 묵묵히 전하느라

허공처럼 막막해지는 까칠한 얼굴들

나무라듯 등뒤 솔숲에서 문득

박새 한 마리 푸드득 솟구쳐 오르고

비탈에서 놀던 허기진 바람이

음복하러 왔는지 옷소매 자꾸

끌어당기며 보채는 한 낮

무덤자리 만큼 열린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 김경윤

 

어머니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다녀와야 한다고

한식날, 고향집에 가서 아이들과 꽃씨를 심었다

살가운 햇살은 아이들의 볼에 보송보송 땀방울로 맺히고

철없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호 하하 꽃이 피었다

마당귀 멍석만한 텃밭 모롱이 어머니의 꽃밭에서

마른 풀 걷어내고 녹슨 호미로 묵은 땅을 파며

봉숭화 채송화 나팔꽃 해바라기 꽃씨를 심는 동안

나는 자식을 꽃씨처럼 키워온 어머니의 세월을 생각했다

좁쌀만한 이 씨앗들이 어서 자라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날이 오면

어머니의 뜰에도 향기 가득한 봄날이 올까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새우잠을 잔

그날 밤, 창 밖의 별빛은 당산나무 가지마다 총총하고

십리 밖 파도소리도 밤새 쟁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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