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에
무덤을 돌보고 묘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요즘에는 요일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서
청명, 한식 전 일요일이나
후 일요일을 택해 행사를 치른다.
어제는 9시에
제주 입도(入島) 이후를 사셨던
조상들을 모신 묘소에 가서
춘향대제를 지냈다.
아직 고사리는 나지 않았고
탱자꽃도 피지 않았는데,
이곳저곳에 산벚이 피어
산과 들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직은 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날씨는 청명하지 못하지만
청명을 노래한 시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련다.
♧ 청명(淸明) - 권경업
숲이 되고 싶으세요?
써레봉 자락 새순 돋을 즈음
장당골 아직 아린 내[川]를
둥둥, 맨종아리로 건너보세요
누구라도 금방
무성한 숲 될 거예요
겨우내 얼어붙었던 탄성
절로 풀리며
♧ 청명 - 박만식
왜식 역사驛舍 처마 밑에
흰 고무신 한 짝
빗물에 삭아가고
맵싸한 고추장 냄새 아리아리한
역전 상회 장독대 옆,
아침 햇살 담뿍 머금고
참새들과 숨바꼭질하다가
화물기차 지나는 소리에
하늘이 노래지며
화들짝 놀라 터지는
임피역 개나리꽃
♧ 청명淸明 - 김용화
쟁깃날에 화들짝, 놀란
흙의 속살이
파헤쳐진다
잘 익은 쇠똥 냄새가 난다
잔등이 시린
실뱀
한 마리
파르르-
꼬리를 떨며
자꾸
흙더미 속을 파고든다
♧ 청명(淸明) - 靑山 손병흥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 지니고서
풍우가 심해 불을 금하고 찬밥 먹으며
풋나물과 산채를 먹던 풍습이 있던 날
농촌에선 이 날을 전후하여 가래질을 하거나
나무심기에도 좋은 한해 농사 준비 하는 시기
그 해 날씨 좋으면 풍년이 든다는 속신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 든다는 믿음 있었던 세시풍속
봄이 한창인 살구꽃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무렵에
지상에 있던 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간 날인지라
그냥 택일 하지 않고서도 조상의 산소를 돌본다거나
손이 없는 날이기에 묘의 이장을 해도 좋다고 믿었던
한 해의 24절기 중에서 다섯 번째로 맞이한다는 명절
♧ 봄 소리 - 권달웅
아파트 닫힌 유리창 문으로
펑 펑 펑 퉁겨 오는
연식정구공의 소리
하얀 공 하얀 마당 하얀 유니폼
청명 하늘 아래 눈부시다.
펑 펑 펑 바람을 몰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납작하게 기울어져 오가는
연식정구공의 보드라운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여기저기
하얀 목련꽃이 웃음을 터뜨리고
꽉 닫혀 있던 내 귀도
활짝 열린다.
♧ 그리움 - 권도중
보고 싶다 하루 종일 전화 기다리다가
아무 일도 못하고 들끓는 그리움 잠재우기
창 열고 길목 향하여 나는 낮게 뜬 구름이다
청명한 햇살 쏟아 만개한 휴일
헤어져 애태우던 그리움도 강 풀린 지 오래인데
큰 믿음 갖지 못하고 허기진 사랑으로 남아서
♧ 봄 수채화 - 권오범
어차피 굽이굽이 끌고 갈 세월
서두를 것 없다고
강이 둑 밑에 찔러놓은 낙목한천 스케치
춘삼월이 붓을 잡은 지 여남은 날
에부수수한 수양버들 정수리에 만날
까치 서넛, 예닐곱 그렸다 지우고
살걸음 열차도 무시로 그렸다 지우고
더러 해넘이 하늘에 구도를 잡는 꽃구름
그러다 느닷없이 천지사방 벚나무에게
하얀 물감 엎질러놓더니
인산인해에 한눈파느라
스케치에 없던 낭만에 젖어있다
복장 터지게 깨작거리는 그림 솜씨에
구성없이 얼룩진 청명 언저리 화판
저 넓은 산과 들 어느 세월에
연둣빛 물감 다 칠해 마무리하려는지
♧ 나뭇잎 꿈 - 도종환
나뭇잎은 사월에도 청명과 곡우 사이에
돋는 잎이 가장 맑다
연둣빛 잎 하나하나가 푸른 기쁨으로
흔들리고 경이로움으로 반짝인다
그런 나뭇잎들이 몽글몽글 돋아나며 새로워진 숲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산은
어디를 옮겨놓아도 한 폭의 그림이다
혁명의 꿈을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버린 건 아니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꼭 사월 나뭇잎처럼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으면 싶다
이 세상 모든 나무들이 가지마다 빛나는 창을 들어
대지를 덮었던 죽음의 장막을 걷어내고 환호하듯
우리도 실의와 낙망을 걷어내고
사월 나뭇잎처럼 손사래 쳤으면 좋겠다
풋풋한 가슴으로, 늘 새로 시작하는 나뭇잎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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