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름 숲에서 만난 녀석들이다.
삼나무 숲엔 별로
봄꽃이다 싶은 것들이 아직 없었다.
다만
깨끗하고 밝은 느낌이 드는
단풍나무 같은 초록 잎새만이
꽃보다 더 순수한 모습으로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 중에
가끔 만나는 이 꽃 같은 참식나무 새싹
이걸 보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 새싹 이야기 - 박동수
사랑 하겠노라
슬픈 사연
가슴속에 묻고
긴 겨울 속에 시들었던 얼룩진 봄
고운 연두 빛
손 내어 밀고
가만히 어루만지며
속삭인 귀속 말
“사랑 하노라”
가슴 저미네
♧ 새싹 - 박효찬
창문 너머로 들어선
한줄기 햇빛
아름다움에 새싹은
겨울 동안의 잠에서 깬다.
교향곡 음률에 맞추어진
솟아오른 멍울
줄기마다 또록또록
삶에 멍울로 흘러
한낮 황홀감을 맛본다.
나비가 찾아들면
종달새가 울어주면
한 움큼씩 자란 너는
늦가을
아름다운 고운 자태
한 송이 꽃으로
나의 기쁨을 채워주리
♧ 봄비, 그리고 새싹 - 우당 김지향
공간 밖 공간에서 자물쇠 망가진 분수가
허름한 지상의 버티칼을 열어 제치고
자꾸 몸을 헐어내고 있다
미안한 듯 고개를 수그리며
어머니 몸을 뚫고 제멋대로 솟아나와
환한 세상구경을 하고 있는
앙증스런 손가락들이
땅의 얼굴을 곰보로 구겨놓고
팔랑개비처럼 팔랑팔랑 흔들어대며
자꾸 물을 부어주는 아버지를 향해
공간 밖 공간에다 대고 고개를 꾸벅거린다
하룻밤 사이 수만 장의 파란
그림엽서를 땅 끝까지 펼쳐놓은 아이들
♧ 새싹 - 박정순
얼음같은 대지였었다
낮과 밤
한치 앞을 볼 수없는
차가운 사방을 베고 누워서
밤나무도
측백나무의 몸짓도
앙상한 단풍나무의 손짓도
꽁꽁 언 추위로 고갤 내밀 수 없었다
밤마다 눈물 글썽이는 별들이
안개로 다가왔고
날마다 언 입술 갖다 댄 햇살이
홀로 가슴앓이 했던 뜰
튜울립, 수선화
파릇파릇한 풀들이
기인 하품 하며
기지개 켜고
고갤 내민
사랑, 그 따사로움에
돌아누울 수 없었다
♧ 봄의 새싹들 - 윤갑수
-초월<crescent>
봄이 오는 길목 여명을 가린
비가 촉촉이 세월을 만지작거린다.
목말라 애태우던 까칠한 봄
가면에 빠진 나무들이 깨어나
봄맞이한다.
햇살 드리운 나무 가지에
막혔던 물관이 물길을 여니
한잎 두잎 싱그러운 새싹들이
봄나들이한다.
젊음의 꽃으로 피어나는 계절
아지랑이 너울진 그날이오면
희망의 꽃으로 태어나면 어떨까
우리 모두 봄의 새싹들처럼…….
♧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 - 조용미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에 닿으려면 간조의 뻘에 폐선처럼 얹혀 있는 목선들과 살 속까지 내려꽂히며 몸을 쿡쿡 찌르는 법성포의 햇살을 뚫고 봄눈이 눈앞을 가로막으며 휘몰아치는 저수지 근처를 돌아야 한다 무엇보다 오랜 기다림과 설레임이 필요하다
적막이라는 이름의 나무도 있다 시월 지나 꽃이 피고 이듬해 시월에야 붉은 열매가 익는 참식나무의 북방 한계선, 내게 한 번도 꽃을 보여준 적 없는 잎이 뾰족한 이 나무는 적막의 힘으로 한 해 동안 열매를 만들어낸다
적막은 단청을 먹고 자랐다 뼈만 남은 대웅전 어칸의 꽃문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이내 적막이 몸 뚫고 숨 막으며 들어서는 것을 알 수 있다 적막은 참식나무보다 저수지보다 더 오래된 이곳의 주인이다
햇살은 적막에 불타오르며 소슬금강저만 화인처럼 까맣게 드러나는 꽃살문 안쪽으로 나를 떠민다 이 적막을 통과하고 나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으리라
* 참식나무의 꽃과 열매(꽃은 매우 작은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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