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초록빛 들판에 서서

김창집 2016. 4. 18. 18:08

 

4월도 중순,

어제는 오름 식구들과 민오름엘 올랐다가

넓은 들판으로 내렸더니,

고사리 솟은 들판은

벌써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배낭이 불룩하도록 꺾은 고사리 짊어지고

길가를 향해 풀밭에 들어섰는데,

노루 두 마리가 깜짝 놀라 뛰어가다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하긴 저들도 주인 허락 없이

목초 밭에 들어와 놀았으니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할 터….

 

에미인 듯 삼나무 숲에서 컹컹 짓던 노루가

훌쩍 나와 두 마리 있는 곳으로 뛰어가다가,

저들을 헤칠 뜻이 없는 걸 아는지

다시 서서 바라본다.

 

간밤에 내린 비로 풀밭은 호수를 이루고

봄빛은 푸를 대로 푸르렀다.

 

 

♧ 초록 사랑을 꿈꾸다 - (宵火)고은영

 

누군들 알랴

청춘의 색깔로

흩뿌리는 계절에

나비는 고운 날개 위

찬란한 빛을 싣고

 

눈부신

비운의 침묵으로

서러웁게 불 밝힌

싸리꽃 하얀 얼굴

 

영혼으로 다소곳이 다가서

그 아픔마저도 치료하는

초록 사랑을 떠올리며

하늘 높이 선회하는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지

   

 

♧ 초록의 향연 - 오보영

 

요즈음 내가

세상을 제패하고

우뚝

 

두드러진 모습으로 사방을 온통 뒤덮고 있게된 계기는

결코

 

가진 힘이 월등해서도

남보다 앞서겠다며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린 탓도 아니랍니다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순리에

 

충실히 따랐을 뿐입니다

 

기다려야할 때

묵묵히

님 오시기만을 기다렸고

 

참아야할 때

잠잠히

 

님 품어줄 때까지 참아왔습니다

 

평소의 신념대로..

 

님은 반드시 다가와 내 편이 되어주실 것이고

님으로 인해 내겐

모두가 환영해주고 반겨 맞아줄

바로 이 시절이

 

꼭 찾아올 것이라는 걸

 

그저 담담하게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을 뿐이랍니다

   

 

♧ 초록의 詩 - 김내식

 

흰 구름 떠도는 파아란 하늘아래

흥분으로 붉어진 마음이 돌출

세상이 노랗다 못해

하얗게 탈색된다

 

호수가 제시한 원을 거닐며

수면에 어른거리는 초록을 보면

비로소 가라앉아

차분해진다

 

저토록 고요한 초록 밭은

자연의 조화이나

마음에 뜨는 초록 밭은

스스로 물 뿌려 내가 가꾼다

 

수면에도 마음에도 바람은 일어

중심에서 외각으로

자꾸만 밀리어 흔들리나

초록은 변함없다

   

 

♧ 초록엽서 - 도광의

 

연초록 그늘 밑에 앉아

초록으로 색을 바꾸고 있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이렇게 적는다

 

어제는 울적했다고

어제는 고달팠다고

이렇게 적는다

 

오늘은 마른 풀 사이로

삐죽이 고개 내민

소루쟁이가 눈부신 하루라서

고맙고도 눈물난다고

이렇게 적는다

 

 

♧ 초록 세월 - 김언희

 

미끄러운 물이끼

물미끄럼 치는 초록 세월, 칼도

빛도 꺽이어 들어간다

찌를 수 없는 물밑 세상, 흐르면서

흐르지 않는구나...... 죽지 않고는 그 무엇도

배때기 뒤집어 떠오를 수 없는

나라

입을

뻐끔거려보아도

물방울만 뽀글뽀글 올라간다 수면에

닿기도 전에 터져 버리고 마는

물거품들만

잠들어라 잠들어라 잠......들어,

귓부리를 핥는

최음의 비단 혓바닥에 일신을 맡기고

익사와 수몰의 젖은 꿈에 잠기어

고요히

난들거린다

미끄러운

초록 세월

 

 

 

♧ 누가 유리바다에 초록 발자국을 찍는가 - 이소연

 

언제부턴가 내 안 깊숙이

유리바다 출렁인다

하늘과 맞닿아 늘 설레는 곳

밤새 내려왔다가 오르지 못한 뭇별들이

은방울 마구 흔들어댄다.

 

실비단 바람 휘감겨오는 바다에

수묵화로 번지는 거대한 숲,

파도 소리에 맞추어 새들 깃들고

갯내음에 취해 나지막이 피어난 해초들 사이로

갈매기떼 한가로운 봄날 오후

 

뻘밭에 누운 길이 가까워 올수록

섬은 점점 멀어지고

초록은 짙어온다

 

하늘빛에 붙잡힌 바다를 두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봄바다 울울리 푸른 숲에는

봄햇살 나른하게 몸 풀고 있는….

 

당신의 유리바다는 지금 햇빛사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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