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5월호와 백작약

김창집 2016. 5. 5. 16:19

 

♧ ‘우리詩’ 5월호 주요 목차

 

*권두에세이 | 임보

*신작시 18인 | 조병기 박명자 정순영 김영호 김일곤 조서희 남유정 이규홍 도경희

                      주명숙 임미리 권지현 심명수 박병대 신단향 마선숙 이미령 이문희

*동시 특집 11인 | 나호열 강만수 임영희 나병춘 이지담 채들 방인자 서대선 임채우

                          문선정 이사람

*기획연재 인물 詩 | 이인평

*신작 소시집 | 정병성

*테마 소시집 | 권순자

*이야기가 있는 詩 | 남유정 채들

*이야기가 있는 동시 | 유하정

*한시한담 | 조영임

 

 

♧ 향수 - 조명기

 

적도 남반부

뉴질랜드에 가면

북두칠성이 또렷하고

둥근 보름달이 북쪽에 있더라

남쪽 바람은 찬바람 북쪽 바람은 더운 바람

고향이 멀고 멀구나

떠나온 지 몇 십 년이나 됐을꼬

산전수전 겪어왔지만

아무래도 고향만 못하지

뜨락의 햇병아리 귀여운 강아지

봉숭아꽃 해바라기 모종하던 누님 생각

아무래도 고향은 버릴 수 없지

그 아저씨 올해 팔순이란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지고 먹고 살기 걱정 없다 해도

고향은 못 버리신단다

그곳에 가면 신발 내던지고 대문 열어주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시단다

 

 

♧ 봄맞이 - 정순영

 

겨우내 창에 낀 세상의 먼지를 훅훅 불며

상큼한 봄의 향내를 따라가면

맑은 이슬이 모여 흐르는 개울에서

청아한 산새 소리 휘감아 너울너울 춤추는 봄바람

계곡의 양지 언덕엔

하얀 눈을 헤집어 고개를 내미는 노란 복수초

쪽빛 엷은 변산바람꽃

햇볕을 바라는 꿩의바람꽃

잎보다 먼저 뽀송뽀송한 솜털의 꽃대 수줍은 분홍 꽃 노루귀와

붉거나 하얀 꽃봉오리를 터트리는 매화가

마음의 창을 두드리니

봄맞이 나온 어느 것 한 가진들 반갑지 않으리.

   

 

♧ 양파 - 김영호

 

그녀가 양파를 벗긴다.

양파가 그녀의 가슴을 벗어준다.

그녀가 양파를 벗긴다.

양파가 상처를 벗어준다.

그녀가 꿈을 벗긴다.

양파가 그녀 옷 벗는 소리를 낸다.

몸을 다 벗은 양파

그녀의 영혼이 소금향기로 남았다.

그녀가 온 생애를 태우고 남은 눈물의 향기이다.

그녀의 기도, 눈물이 그 집이었다.

눈물의 집을 지으며 그녀는 평생을 살았다.

양파 속에 살아온 그녀의 매운 눈물,

내 생生의 천지를 흔들었던 핵폭탄이었다.

내 생의 우주를 부활시킨 핵폭탄이었다.

 

양파, 피눈물의 탑이다.

   

 

♧ 매화 - 남유정

 

매화가 핀다는 말은

매화가 진다는 말

귀가 열린

매화꽃망울을

남쪽바람이 흔들 때

봄이 온다는 말은

봄이 간다는 말

발소리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고요히 꽃나무에 기대어 볼 때

네가 온다는 말은

네가 간다는 말

 

봄은 나른히 언제 오나

은근한 향기에 그늘을 달고

너는 언제 오나

   

 

♧ 봄날에 - 이규흥

 

우수雨水의 빗물 받아

화초에 뿌렸더니

부스스 눈 비비고

깨어나는 소우주小宇宙

오늘은 쟁기를 메고

일궈볼까 마음 밭

 

뒷동산 멧비둘기

구구구 울음 울 때

푸드득 날개 치며

날아오른 산 꿩은

동구 밖

더디 오는 봄

어서 오라 꾸짓다

   

 

♧ 철쭉 - 도경희

 

스무 살 오래 묵힌 사랑

일제히 등불 하나씩 켜 들고

눈 깜빡하는 사이

잘 생겨 온전한 월아산

철쭉꽃 물결로

숨 가빠하며 뒤척이고 있어

오월 이 한철

벙어리뻐꾸기도 잠이 들지 못하네

저것 봐,

하현달마저 슬쩍 조는 체하는

기막힌 밤을 

 

 

♧ 아포리아aporia - 박병대

 

타성에 무디어진 촉수의 감각으로

하루를 거두어들이는 쓸쓸한 시간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절실함에도

의례적으로 이해타산을 따졌던 곳마다

고독했음을 기억한다

야속하고 서글프고 쓸쓸하고 외로우면

속살 드러낸 황폐한 산이 마음에 들어왔다

방향을 상실한 느적걸음으로 배회하는 거리에서

오욕의 고독을 털어내며 정화되고 싶은 희망을 잉태한다

앞서 달리는 것은 외로운 일이어서

간혹 뒤돌아보기도 하지만 더욱 쫓겨야 하는

종점 없이 달리는 일은 달릴수록 가속을 요구한다

밤이 깊을수록 높아지는 달은 고요의 정점

황폐한 산이 달에 젖어 시름거리는

밤은 왜 서쪽으로 달려야 하나

   

 

♧ 돌탑 - 이문희

 

누구의 땀방울인가

무겁게 얹혀진

염원을 보며

욕심의 단추를 푼다

 

긴 시간을 돌아온

어느 생의 비의가

이리 깊은지

 

물기 많은 돌 이파리

그늘에 어룽진다

 

쌓여진 돌탑 위로

마음은 곤해지는데

당산에 풀지 못한 매듭이

장송곡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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