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초가(草家)가 있는 풍경

김창집 2016. 5. 26. 09:22


얼마 전 답사차

성읍민속마을에 다녀왔다.

 

거기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아직도 남아 있는 정겨운 초가집들….


우리 집은 1970년대 초반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으니까

어언 40년이 넘었다.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슬레이트 재료가 몸에 아주 해로운 성분이어서,

웰빙과 전통적인 점을 감안하여

좀 불편해도 그냥 놔둬도 좋았을 것이다.


군대 3년 살고 제대해 와보니,

당시 개발이니 새마을이 하는 성화에

아들과 상의도 없이 지붕을 싹 걷어 봐꿔버렸다.


우리 전통을 잃어버린 것 같아 섭섭했다.

앞으로는 옛것 하나 바꾸는 일에도

세심한 검토와 토론이 있어야 하겠다.

  

 

 

♧ 꿈꾸는 초가집 - 양전형


그을린 부엌 천정에는

배고픈 뱀이 살고 있었다

부지깽이만한 제 몸피보다 큰 쥐를

아기숟가락 같은 입으로 덥석 물어

아가리가 찢어져라 삼키곤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물항아리 속에 띄워 둔

입보다 큰 물외를 꺼내 우적우적 씹으면서

죽음길을 통과하는 쥐꼬리의 떨림과

삶이 굵어지는 뱀의 몸뚱어리를 보고 있었다

등줄기가 휘어진 초가지붕엔

까마귀 소리에 깜짝깜짝 커지는 애호박이

한여름 뙤약볕에 그을리며

안간힘으로 매달려 있었고

살갗이 찢어지도록 허기진 마당엔

고추잠자리들이 바람을 타며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 초가집 한 채 - 임종호(山火)


개나리 울타리에 흐드러지고

내 꿈이 피던 초가집 한 채

 

늙은 감나무 두 그루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꽃사슬 꿰매는 아이의 놀이터

긴긴 여름도 짧은 한나절

 

감이 익어 가면 까치도 오고

훠이 훠이 숨바꼭질

아버지는 바작에 감 장사 나가시고

 

부엉이 감나무에서 울면

그날 밤 눈이 왔었지

 

 

 

♧ 노란 초가집 - 김용택

 

하늘은 청명합니다

고산길을 걷습니다

울 너머 핀 개나리꽃을 보며

움막이라도, 내 집 한 칸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기둥을 세워 받치고

한 기둥은 닿지 않습니다

 

짓지 못한 노란 초가집이 천천히 허물어지는 슬픔,

다시 걷습니다   

 

 

♧ 고향 - 최제형(源谷)

     --초가집


토담집 남향받이

 

고드름 녹아내리는

서너 칸 초가지붕

 

찬바람 맴돌다 가는

작은 토방 위에

옹기종기 모인 더벅머리들

 

해진 양말

검정 고무신 속에 감추고

발 시려 동동거리던

어린 겨울 한 낮

 

이제는 아득한

고향 초가집

 

 

 

♧ 그리움이 있는 초가집 - 한상숙


어릴 적 살던 초가집

지붕은 볏짚으로 덮였고

황토흙으로 벽을 만들었지

 

무료한 날

침을 발라 벽과 벽 사이의

구멍을 뚫어 마주보며 웃다가

 

호령치는 아버지 음성에 놀라

맨발로 텃밭까지

도망치다 개똥을 밟았지

 

처마밑에 제비가 집을 지었고

처마밑에 참새가 새끼를 낳았네

 

뒷광에는 쥐들의 쉼터

우리 집 양식 축낸다며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왔지

 

산골에 찾아온 아침

아침밥 짓는 엄마의 무쇠솥

뚜껑 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아침을 알리는 어미소의

고함소리에

벌떡 일어났네

 

창호지 문틈 새로

빼곡히 내다보니

검정 고무신 내 신발위에

흰 바둑이가 날 기다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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