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성운 시집 '오래된 숯가마'에서

김창집 2016. 5. 30. 00:43



아그배나무 그늘에서

 

누가 불러 오셨나 아그배나무 그늘에

상처받은 마음은 그냥 내려놓고

실핏줄 환히 보이는 연분홍꽃으로

 

아침이면 이파리에 대롱대롱 이슬 달리듯

살다보면 그렁그렁 눈물이야 없을까만

그런 날 아그배나무는 자꾸 손짓한다

 

사랑과 미움이 버무려진 유월에

유혹일까 위무일까 휘파람새 절인 울음

그대가 내미는 그늘, 꽃등 하나 흔들린다

        

 

배롱나무

 

 길을 가다 시선이 멎네

 길모퉁이 목백일홍

 

 품위도 품위지만 흔치 않은 미인이다. 조금은 엉큼하게 밑동 살살 긁어주면

까르르 까르르륵 까무러칠듯 몸을 떤다. 필시 바람 때문은 아닐 거다. 뽀얀

피부며 간드러진 저 웃음, 적어도 몇 번은 간지럼 타다 숨이 멎은 듯

 

 그 절정

 어쩌지 못해

 한 백여 일 홍조를 띤다

        

 

자목련 두 그루

 

나의 작은 뜨락엔 자목련 두 그루가 있다

더러 손이 갔지만 직선과 곡선을 품어

휘어도 꺾이지 않는 품성도 지니고 있다

 

지난여름 태풍으로 잎들은 남루했다

그 형상 마주할 땐 4월은 없다 했는데

만삭된 꽃봉오리들

또다시 봄 불이다

 

우리네 입소문은 번지다가 멈추지만

자목련 봄 불은 절정이 돼야 꺼진다

겨우내 아꼈던 말을 한꺼번에 쏟는 거다

 

얼핏 보면 오늬 같고 다시 보면 부부같다

어깨를 감싼 듯이 따스한 봄날 오후

양 볼에 홍조를 얹은

꽃송이 꽃송이들

    

 

 

술패랭이꽃

 

그냥

 

봤으면 됐지

 

무슨 말을 또 하려고

 

낮술에 불콰해진 내 고향 불알친구!

 

동구 밖 전송 나왔다

 

윤칠월

 

술패랭이꽃

        

 

담쟁이

 

위험해요

맨손으로

벽을

타 오르는 건

 

믿음이지요

한 가닥 자일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기어이

쏟아붓네요

서늘한 별빛 몇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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