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시집 '자벌레의 꿈'

김창집 2016. 6. 3. 00:24



산을 좋아하는 권경업 시인의 시선집

자벌레의 꿈을 받았다.

 

2년 전에 나온 시집이지만

많은 시를 써온 시인의 시선집이라

주옥같은 작품을 대할 수 있어 좋았다.

 

그 중 시인이 즐겨 찾는 지리산

그 중에서도 취밭목과 관련된 시를 뽑아

주변 풍경과 함께 싣는다.

 

치밭목 산장은 권 시인님과 관련하여

많은 신세를 끼친 산지기가 있어

언제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서시] 오솔길

 

청려장(靑藜杖) 짚은

등 굽은 모습이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남종화(南宗畵) 넉넉한 여백 속의

한가한 오솔길 위로

나를 그려 넣어주세요

 

가을 장당골

도드라지는 오솔길 위로, 제발

나를 그려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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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려장(靑藜杖) : 짚으면 신선이 된다는, 명아주대로 만든 지팡이.

*취밭목은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 연봉인 중봉 바로 아래, 장당골과 조개골 상부, 써레봉 지능에 있는 1,400고지의 지명이다. 지리산의 자연환경 중 보존이 가장 잘된 지역으로 등산객의 안전을 위한 조그만 유인(有人) 대피소가 있다.

        

 

하산길 

 

찔레꽃은 언제나 희고

뻐꾸기 울음은 여전히 서럽습니다

푸른 산빛 어제와 같고

변함없이 낭랑한 개울물소리

산자락 흔드는 바람 그대로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오직 외로운,

오솔길 그대를 따라

오래 전부터 나그네이던 내가

세월 되어 걸어갑니다

화선지 위이 수묵처럼 번진 어둠

예전에도 그랬듯이

쑥밭재 잿마루 초롱한 별들이

아직은 시린 자작 숲머리

이슥토록 조잘대다가

어머니의 걱정 어린 손짓에

졸음 겨운 눈 비비며, 타박타박

서쪽 하늘로 돌아가듯이

    

 

 

쑥박재 너머엔 누가 있기에

 

키 큰 상수리 숲 비집고

눈 찡긋인 보름달, 발그레한 저녁 해

수도 없이 넘어갔습니다

 

풍문이 전한, 그 많은 해와 달 중 몇은

벽송사 선방 수자들 화두(話頭)가 됐고

또 몇은, 골 깊은 광점동의 저물녘

먼 손짓으로 부르는 어머니의

근심스런 속 훤히 밝힐

가난한 산골의 어린 해와 달이 되었답니다

        

 

낮달 1

 

낮달이 써레봉을 넘다가

중봉에 걸렸다

 

망태 장대 그냥 두어라

 

손 뻗으면 잡을 듯

재 너머 벽송사 가는 길목

깔깔 대는

몇 안 되는 광점동 아이들을 위해

 

오늘밤은, 쑥밭재로

꼬리별이나 듬뿍 떨어져라

오줌싸개들 발이 저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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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치기 폭포

 

그리움엔 길이 없어

천길 벼랑 몸을 던집니다

 

나지막이 나지막이

그대라는 바다 가 닿고 싶어

    

 

 

산책

 

별이 몸을 헹구고 간 이슬들, 송글송글

 

사월 취밭목 푸른 곰취 앞에는

 

아침 산책 나온 개미는 장화를 신지 않았습니다

 

나도 장화를 신지 않았습니다

    

 

 

취밭목 가는 길

 

시인이랍시고 돌부리 가시밭길

휑하니 집 나가서 떠돌다 온 놈

그래도 보기 싫다 외면 않고

묵묵히 섶을 열어 속살로 맞이하는

 

선한 아내의, 꽃무늬

푸른 저고리 옷고름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