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8월은 또 이렇게 찾아와

김창집 2016. 8. 2. 00:02

                                                                                                          *맥문동



우리가 빠듯한 삶에 바쁘고

찜통의 더위로 정신 못 차리는 동안에도

8월은 또 그렇게 슬며시 찾아와

우리 앞에 땀을 흘리라 한다.

 

세상 사는데 아무 걱정 없는 사람들은

저 시원한 세상으로 피서를 떠나거나

에어컨 켜놓고 맛있는 과일 골라 먹으며

야구중계나 곧 이어질 올림픽 중계를 보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할 터이지만,

초하루부터 세상과 이웃의 생명 평화를 위해

땡볕에서 걷기를 주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삶이고

어느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섣불리 속단하지 말고,

혹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비아냥거리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하긴 버젓이 에어컨을 달아 놓고도

전기 누진세 폭탄 맞을까봐 더위를 참으며,

오늘도 집안 식구들 눈치를 보아야 하는

돈 못 버는 가장 노릇은 아무래도

8월이 지나야 끝날 것 같다 

                                                                               *연꽃

 

8월은 - 성백군

 

한해의 갱년기다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삭이는 성숙한 달이다

 

말복, 입추 지나 처서 접어들면

생각 없이 마구 극성스럽던 더위도

치솟던 분수대의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뒤돌아보며 주저앉고, 이제는

성숙을 위해 성장을 멈추어야 하는 때를 아는 것처럼

뻣뻣하던 벼 이삭도 고개를 숙인다

 

꽃 필 때가 있으면 꽃 질 때도 있듯이

오르막 다음은 내리막

밀물 다음은 썰물

이들이 서로 만나 정점을 이루는 곳, 8월은

불타는 땅, 지루한 비, 거친 바람, 다독이며 고개를 숙이고

가뭄 지역, 수해 매몰지구에 의해

시장에 나온 상처 입은 과일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생의 반환점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고

집에서 기르는 누렁이 한 마리

담 그늘 깔고 엎드려 입 크게 벌려 혀 길게 늘어뜨리고

절은 땀 뱉어내느라 헉헉거린다.

                                                                           *박주가리 꽃 

 

 

8월 소나기 - 오보영

 

예기치 않게

불현 듯 찾아온 당신이라서

 

더욱 반갑네요

 

달아오른 열기

제대로 감당하지를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때맞추어 내달려와

뜨겁게 달구어진 몸 시원하게 식혀주니

 

얼마나 감사한 지요

 

어쩌면 그렇게 어려움 있을 때마다 살펴 아시고

얼른 다가와

 

심한 갈증 타오르는 목마름을 적절하게 해결해주는지

 

당신의 크신 사랑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입니다   

                                                                                  *여우팥

 

8월의 초상 - 임영준


야금야금 베어 먹어도

살금살금 기어 다녀도

청춘은 간다

 

넘실거리는 바다

흐르는 살별을 따라

영그는 섬

 

다시 한 번

익을 만큼 익었으니

기다림의 선을 그어 가리라

                                                                               *송장풀과 박각시

 

8월 느낌 - 박인걸

 

용암을 분출하는

분화구 앞에 서 있다.

몸 온도를 웃도는 후끈거림

기 세게 내뿜는 불

달아오르는 열기

도망칠 곳이라곤 없다.

수목은 뜨거워 행복하다.

넝쿨은 서로를 끌어안고

짙은 정기를 뿜어대며

쾌감은 절정에 이른다.

검푸른 녹음에 숨어

풀벌레들 사랑이 무르익고

푸득 거리는 매미들의

대낮 정사도 뜨겁다.

오르가즘

카타르시스

클라이맥스

판타스틱

생명체의 환희가

온 천지에 충만하다  

                                                                                  *돌콩

 

8월처럼 살고 싶다네 - (宵火)고은영

 

친구여

메마른 인생에 우울한 사랑도

별 의미 없이 스쳐 지나는 길목

화염 같은 더위 속에 약동하는 푸른 생명체들

나는 초록의 숲을 응시한다네

 

세상은 온통 초록

이름도 없는 모든 것들이 한껏 푸른 수풀을 이루고

환희에 젖어 떨리는 가슴으로 8월의 정수리에

여름은 생명의 파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네

무성한 초록의 파고, 영산홍 줄지어 피었다

 

친구여

나의 운명이 거지발싸개 같아도

지금은 살고 싶다네

허무를 지향하는 시간도 8월엔

사심 없는 꿈으로 피어 행복하나니

저 하늘과 땡볕에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나의 명패는

8월의 초록에서 한없이 펄럭인다네

 

사랑이 내게 상처가 되어

견고하게 닫아 건 가슴이 절로 풀리고

8월의 신록에 나는 값없이 누리는

순수와 더불어 잔잔한 위안을 얻나니

희망의 울창한 노래들은 거덜난 청춘에

어떤 고통이나 아픔의 사유도

새로운 수혈로 희망을 써 내리고 의미를 더하나니

 

친구여,

나는 오직 8월처럼 살고 싶다네

                                                                                                                  *더덕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