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더위를 이기고 핀 풍란

김창집 2016. 8. 5. 00:35


어제 아침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흘깃

그럴 듯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지만

바쁜 길이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돌아올 때 눈여겨 보았더니

바로 이 꽃이다.

 

이 풍란(風蘭)은 잎사귀가 작다고

소엽풍란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 남쪽 섬, 바위 위나 고목의 줄기에 붙어 자라며,

뿌리는 끌같이 길게 뻗어간다.

 

전에 홍도나 흑산도에 많이 있었으나

마구잡이 채취로 거의 사라져,

지금 복원중이다.

 

넉넉한 시간을 갖고 잘 찍어보려 했으나

신경 쓸 곳이 많다 보니 시원치 않다.

   

 

 

풍란 - 김승기

 

돌을 침대 삼고

나무 등걸을 베게 삼아

꼭 공중에 터를 잡아야만 했을까

 

허공으로 뿌리 벋으며

이슬을 받아 머금어야만 했을까

 

뿌리마다 바람을 묻히고 살아야만

새하얗디하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렇게 五慾七情(오욕칠정)을 버리고 나야

꿀맛 같은 그윽한 ()을 피울 수 있을까

 

知天命(지천명)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物慾(물욕) 하나는 버릴 수 있었는데

언제쯤 五慾七情(오욕칠정)을 버릴 수 있을까

 

움켜쥘수록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바람아

허공에다 마음을 걸어놓으면

될까

 

깨친 후에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만 하는

풀고 나서도 수행을 거듭해야 하는

頓悟漸修(돈오점수),

너는 내게

영원히 행복한 話頭(화두)이다

 

  

 

풍란 - 정일남

 

섬에 가서 바다가 세워놓은 유형(流刑)을 본다

깎아 세운 절벽은 형벌 같다

파도소리만 듣는 귀가 있어

벼랑의 아슬아슬한 생을 누가 가져갈 수 없다

삶이란 오직 꽃이고 향기다

이곳까지 몰래 따라온 낮달도

절벽에 매달린 생을 탓하지 못한다

풍란은 바람과 물결이 키운다

꽃이 피면 금방 풍랑이 이는

이유를 바로대지 못하고 말없는 저것

절경이 섬을 먹여살린다는 것도 풍란은 안다

나비도 오르기 힘든 절벽 위에

어떤 연고가 있어 뿌리 내린 것이 틀림없으니

네 간직한 향기가 섬 전체를 지배한다

붉은 절벽이 너의 길이니

내 질병도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낫는다

수평선은 적막이 넘나드는 출입구

육지로 유람선이 돌아올 때는

풍란의 꽃 향이 정신없이 따라온다

     

 

풍란(風蘭) - 김하인

 

바람을 꺾어

마음에 심었더니

삶이 돋고

한 사람의 생애가

() 치듯

줄기 피더라.

 

꽃피려면

사랑 와야 하는데

사랑은 그저

무심(無心) 흔드는

바람 같아서

속절없더라.

 

그놈 사랑 와서

내게 저지른 짓이란

줄기며 뿌리까지

싹쓸이 바람으로

이승서 저승까지

데려가더라.

      

 

 

 

풍란 - 백우선

 

바람이 보인다 바람의 샘,

바람의 하늘끝이 보인다 바

람의 몸, 바람의 숨결

심신도 파랗게 흐른다 바람

은 명상 중이다 노동 중이다

바위도 숨이 돌아 한 오리

실바람이 인다 일제히 길이

트인다 별빛과도 한 살림,

우주가 한 숲이다

   

 

 

풍란(風蘭) - 강남주

 

파도 소리에

뼈 끝

으깨어지고 있었다.

 

바람 소리에

귀가

멀어져가고 있었다.

 

行樂(행락)의 손끝에서

피를 말리며

歸去來(귀거래)의 꿈을 織造(직조)하며

여름 한나절을

떠돌고 있었다.

 

한 때

소나기로 퍼붓던

햇살이

激烈(격렬)하게

흔들리고

 

벼랑끝을 핥고 있던

隱士(은사)의 숨결이

가난한 부엌의

질그릇 소리를 내고 있었다.

     

 

풍란 - 박라연

 

살면서

가장 목이 마를 때

긴 물관부를 흔들며 꽃눈을 튼다.

터서는 1백일 지지 못해

향기로운 혀 내밀고 서 있다.

밤이면

하얀 뿌리털 잘게 흔드는 한숨 소리

떠날 날을 미리 알고

한 점 벼랑에서도 대를 잇는 뿌리들아

이 땅의 잡초보다 처절하구나

숨진 네 그리움의 뿌리를

풀이끼로 포근히 감싸준 그날

삐죽이 고개 내민 새끼 촉 하나

아하, 서로의 눈빛만으로

새끼를 치는구나 사랑하므로

헤어져 사는 너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