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소나무야 소나무야

김창집 2016. 8. 6. 07:13


칫과에서 나와 동내 소공원을 거쳐 오다가

하나같이 몸에 다른 덩굴 식물을 감고 있는 소나무를 보았다.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했던

수수한 우리들의 나무, 소나무여.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아낌없이

터전을 주워 같이 살려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눌타리, 송악, 담쟁이가 주종이다.

 

요즘 온난화 때문인지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벌겋게 타들어가며 죽는 모습을 보면,

그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린다.

   

 

 

소나무 우거진 숲에 살고 지고 - 이은경

 

   그대와 나, 소나무 울울창창하게 우거진, 숲 길 옆 은빛 폭포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를 씻고 솔방울을 주워요. 정치가 황량해지고 종교가 황폐해진 세상살이 잊어버리고, 소나무 옆 작은 터에 짚으로 지붕 올리고 집을 짓고 정겹게 살면서, 해 뜨면 해 보고 달뜨면 달 보고 별들 초롱초롱 하늘을 수놓을 때, 커다란 마음 짓고 살아요. 인생이란 그림자놀이에 불과한 것. 항상 나 살아 온 그림자는 실제 나보다 더 큼직했소.

   

 

 

그 소나무는 휘지 않는다 - 유소례

 

그 소나무는

휘지 않는 등뼈를 키우며

지축의 심지에

파란 불을 지핍니다

 

심지 따라

타오르는 불꽃이

하늘바라기하며

손끝까지 번져 갑니다

 

높새바람 휘모리바람이

멱살 잡고 줄다리기하면

가지는 한바탕 인대 앓이를

방언으로 외쳐댑니다

 

엉겅퀴가 허리를 감고

가시나무 새가 살을 뚫어

푸른 피를 갉아먹어도

소나무는 하늘빛에 가슴을 폅니다

 

당신과 언약한 묵시,

늘 찐득한 진액은

바람 부는 계절에도 단심으로 묶어

하늘 품에 묻어 둡니다.

     

 

소나무 - 박인걸

 

살아서 천년을

한결같이 푸르게

죽어서 관솔로

천년 은은한 향

 

폭풍우 몰아쳐도

품위 있게 흔들릴 뿐

輕薄(경박)한 비명으로

흐트러지지 않는다.

 

숲이 옷 벗을 때

속살 드러내지 않고

울긋불긋 요란을 떨어도

곁눈질 하지 않는다.

 

삶이 무거워

등줄기 골이 파여도

巨木(거목)이 되는 꿈 하나로

구별되게 사는 나무

     

 

소나무의 당당함을 사랑한다 - 이솔

 

솔잎이 부드럽게 밟히는 숲에서 너를 본다

맑은 바람을 먹고 청정한 마음으로 꽉 찬

탱탱하고 윤기 흐르는 피부,

갓 씻은 몸에선 쌉싸한 향내가 난다

초록의 타월로 털어내면 온 숲에 퍼지는 솔향

솔잎 끝에 송홧가루에

눈부신 금빛의 향내가 있다

 

곧고 단단하게 하늘로 치솟은

검붉은 비늘들

지금은 손때로 길이 든 책상이 되어

결이 고운 함지박이 되어

내 곁에 있다

견고하고 믿음직한

내 삶의 기둥이 되어 자리 잡고 있다

 

 

바위섬 소나무 - 이길원

 

겨우 뿌리 내린 바위 틈

어둠 속으로 폭풍이 감긴다

폭풍에 흔들리는 하늘

누군가가 나를 밀고 있다

파도가 으르렁 대는

바다 속으로 밀고 있다

 

(버티자.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사는 게 낫다. 이 삶이 어떠하던 간에 살아 있어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균형을 잃지 않으려 몸을 버둥인다

그럴 때마다 굽어 지는 가지

화산처럼 폭발하려는 울음을 삼킨다

무엇일까. 나를 미는 것은.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지치고 지친 소나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렴풋이 알았다. 파도 속으로 자신을 밀고 있는 것은 별빛도 달빛도 아닌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인 것을.)

   

 

 

소나무 - 방철호

 

   야수의 눈이 불을 밝히는 절벽의 밤이다. 따가운 햇살에 방황하던 영혼을 씻고, 구름 위에서 가출 소년들의 잔치를 벌였던 하루도 지나갔다. 이슬 묻은 바람 한 줄기가 비린내를 풍기며 온몸을 감싼다. 칼벼랑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지도 오래되었다. 활엽수, 잡목림의 햇볕 다툼에 좋은 자리 다 내주고 아무도 살 수 없는 황무지를 일구어 온 것은 먼 조상 때부터였다. 왜 조상들은 ()와의 싸움보다 나와의 싸움을 선택했을까. 싸움에 서투른 조상은 발 디딜 곳 없는 벼랑 끝에서 머리칼 쏟아지는 생의 비탈을 거머쥐거나, 냉혹하게 눈보라 치는 얼음 구덩이에 뿌리 단단히 박는 일이었다. 아무도 올 수 없는 곳에 생의 꽃을 피우는 일. 그것은 끝없는 자신과의 힘 겨루기였다. 얼굴이 바늘이 되고 일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함도, 송홧가루의 그윽한 향기도 그 결과였다. 솔방울은 늘 푸른 하늘을 꿈꿔왔다. 꿈은 별무리 쏟아지는 하늘의 끝자락에서 펄럭이다 사라지곤 하였다. 살아가는 일은 항상 가꾸어 놓은 자리를 내주고 상처를 받는 일이었다. 비틀린 전리품을 인간들은 희한하다 자신의 정원에 옮겨 놓았다. 하늘의 천둥, 번개, 폭우, 눈보라, 인간 세상의 나무꾼은 시원하게 가슴을 씻어주는 봄바람 같은 것이었다. 或者(혹자)의 손가락을 받으며 짐짓 무덤덤한 척 얕은 미소의 가슴앓이는 나를 키우는 무서운 거름이 되었다. 이제 길은 하늘로 열려 있거나 저 이끼만 사는 툰드라의 凍土(동토)이다. 낯익은 또는 낯선 잡목림의 영토 넓히기가 물소 떼 몰려오듯 귓전을 휘감는다. 하얀 밤이 눈을 감는다. 아직 耐性(내성)의 길은 멀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녀의 한을 감춘 해녀콩  (0) 2016.08.11
입추를 보내며 붉은사철란을  (0) 2016.08.07
더위를 이기고 핀 풍란  (0) 2016.08.05
8월은 또 이렇게 찾아와  (0) 2016.08.02
서귀포 면형의 집 나무들  (0) 201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