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8월호의 시와 더덕 꽃

김창집 2016. 8. 4. 00:18



시 전문지 ‘우리’ 8월호가 나왔다.

주요목차와 함께 시 몇 편을 뽑아

요즘 한창 피어나는 더덕 꽃과 같이 올린다.

 

권두 에세이 | 마선숙

신작시 26| 최승범 홍해리 송문헌 최성민 김일곤 유진택 강만 심춘보 최상호 박정원 홍예영 백수인 장성호 채들 홍준경 전건호 조길성 이재부 황인학 최병암 한문수 김부희 최서연 기성서 유수진 최연수

기획연재 인물 | 이인평

신작 소시집 | 박은우

테마 소시집 | 우정연

순천작가회의 동인특집 | 이민숙

시에 대한 에세이 | 나병춘

한시한담 | 조영임

   

 

 

구미 - 최승범

 

이 한 달 이리저리

초복도 중복도

 

소서도 대서도

오보록이 담겼거니

 

챙겨 볼

절후 입맛도

 

놓칠 일이 아니야

     

 

일요일 오후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171

 

이제까지 한평생 75

46년을 함께 산 한 생인데

아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남편이란 사내

일요일 하루 종일 두 사람이 부딪치는 일상

한평생 한 말이 한 말이 아니라

몇 말이 되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할 말이 많이 남아 있겠는가

오전을 무사히 보냈으니

오후 세 시 반

촐촐한 참에 막걸리 한 병을 꺼내다

홀짝이고 있는 사이

밖으로 나가는 사람

내가 얼마나 더 늙고 낡아야

그 사람 속을 알 수 있을까

지금 알고 있다 해도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말라가는 웅덩이에서 힘없이 퍼덕이며

물끄러미 바라다보는 피라미 한 마리

혼자 견디다 가자며 막걸릿잔을 들이켭니다.

   

 

 

호명산 - 송문헌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산 능선

새소리 바람소리 쉬어가는지 잠잠한

그 길을 내가 산과 함께 가고 있다

 

아슴아슴 저 멀리 산 산 산

축령산 화야산 보납산 새덕산

넌지시 바라보는 눈빛이 살갑다

 

무시로 호랑이의 포효소리 들렸다는

그 호명산을 내려서니 호명호

야생화 지천 너른 품을 내어준다

 

---

*호명산 : 경기도 청평이 있는 산.

그 산자락엔 호명호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흔적 - 김일곤

 

주말농장 채소밭 아래

포장도로

 

작은 물줄기가 물머리를 붓 삼아

물 그림을 그렸다

아니 물 거미줄을 쳤다

 

붉은 노을 뜬 허공에선

뭘 잡으러 밤새 애면글면

거미줄을 쳤을까

 

손금 같은 길을 간다

 

새털구름이 지나가고

새벽별이 지나가고

마지막 어린 올챙이 발자국이 지나갔다

 

흐를 것은

모두가 흘러 텅 빈 늑골, 골성에

그믐달이 떴다

   

 

 

풍욕 - 유진택

 

밤 꽃술들이 꼬리를 흔들어댄다

흑염소 뭉게구름 따라가는 길

밤 숲엔 비릿한 냄새뿐이다

 

바람나 가출한 남편 떠오르면

밤 숲으로 올라간다는 과부 이씨

풍욕을 즐기는지 못 매무새가 헐렁하다

고독의 세월에 찌들어

살랑대는 꽃술에 파묻혀 사내 냄새를 맡는다

 

뭉게구름처럼 방죽 길로 걸어가는

흑염소 무리 위로

능글능글한 남편의 얼굴이

밤 꽃술처럼 너울거린다

     

 

동백 - 강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링거를 꽂고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눈부신 청춘의 시절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고운 님 품에 안기던 모습 그대로

곱게 웃으며 툭!

목숨을 내려놓는다

 

두려워하기는커녕

죽음을 희롱한다.

     

 

여름, 여어름 - 홍예영

 

울어야지, 울고 말 거야

울보 시인처럼 매미는 소리 높이고

잠깬 나방은 여름, 여어름,

기호 위로 천천히 날았다

쉴 장소 없어

뜨거운 증기 속에 주저앉았다

 

살이 오른 돼지

가뿐 숨소리

들여다보니 나였다

   

 

 

본향 - 채들

 

탯줄 묻은 골짝에 들어와

 

오늘을 풀어놓고 눈 감으니

 

울컥, 들리는 외할머니 목소리

 

골물소리 새소리도

 

걸림 없이 들어왔다,

 

걸림 없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