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더위에 맞서는 배롱나무 꽃

김창집 2016. 8. 13. 08:51



영 가실 줄 모르는 더위

이럴 땐 태풍이라도 하나 와

오래 누적된 열을 식혀주면 좋으련만

도저히 그럴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어제는 끝 모르게 이어지는 차량행렬

아침부터 더위에다가 끝모를 정체까지,

내가 타고 갈 택시는 어디에도 없다.

 

마침 오늘 행사 차량 지나갈 곳이 이쪽이라

지나는 길목에서 타겠다고 전화해 놓고

그곳까지 슬슬 걸어가는데, 이 싱싱한 꽃을 만났다.

 

시간도 약간은 여유가 있어

폰을 꺼내들고 오랜만에 꽃을 찍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가는 꽃이 없다는데,

이 꽃은 번갈아가면서 백일을 채운다네.

     

 

배롱나무 꽃그늘 아래서 - 이정자

 

사랑아, 이제 우리 그만 아프기로 하자

피어서 열흘 가는 꽃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무색케 하는

배롱나무 꽃그늘 아래서 우리 뜨겁게 만나자

당신과 내가 눈 맞추던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가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견디며

배롱나무꽃이 백 일 동안이나

거듭 꽃 피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호숫가 노을이 다 지도록

가슴 속 그리움 다 사위도록

무언의 눈빛으로 나누자구나

서로에게 눈 먼 죄로 쉽게

해 뜨고 해 지는 날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흘러가는 강물에 띄워 보내며

배롱나무꽃보다 더 화사한 사랑 하나

우리 생애에 새겨 넣자구나, 사랑아

 

  

 

배롱나무 꽃 - 예당 조선윤

 

화무십일홍이요

열흘 붉을 꽃 없다지만

석 달 열흘 피워내어 그 이름 백일홍이라

뜨거운 뙤약볕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꽃봉오리 터지던 날

진분홍 주름치마 나풀거리며

살랑이는 바람결에 살포시

미끈한 속살 내비치는 한여름의 청순한 화신이여!

제 안에 소리없이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온몸 다해 다시 피워내어

폭죽처럼 터져 선혈처럼 낭자하다

반들반들한 수피에 붉는 간질 나무여

화려한 꽃그늘 밟으며

꽃 폭죽 맞으며 여름 가고

꽃 카펫 밟으며 가을 온다.

     

 

선운사 배롱나무 夏安居*에 들다 - 송정란

 

올해도 저 허공에 던져둔 화두를 향해

굵직한 가부좌로 틀어 앉은 목백일홍

漸悟行*, 오랜 修行으로 굽은 가지, 삼매에 들다

 

---

*하안거(夏安居) : 스님이 여름 장마 때 외출하지 않고 한 방에 모여 수도하는 일.

*점오(漸悟) : 불교 용어로서. 점점 깊이 깨닫는 것을 뜻함.

      

 

 

백련사 배롱나무 - 김종구

 

매미 피울음 쏟아지는 땡볕아래

선홍빛 가슴 활짝 열어젖히고

꽃 염주 돌리고 있다

아연 화안해진 법당 안 부처님만

색즉시공 공즉시색

마음 하나 흔들리지 않고

 

하안거 중인 스님들의 온몸에 불이 난 땀띠인가

화두 깨우치는 밝음인가

아님 처녀 동박새 참다 참다 이제사 뱉은

처연한 목울음인가 생각하다

그냥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비구니 한 분 자던 바람 일으켜놓고 지나가자

배롱나무 냄새가 난다

그때, 배롱나무에선

화엄경 소리 들리고

속살 냄새 확

시인이 뒤집어썼는데

 

게슴츠레하게 보고 있던 낮달

뜬금없이

바짓가랑이 내린 구강포 에

철푸덕 철푸덕

제 몸 식히고 있다

     

 

배롱나무꽃 - 반기룡

 

개화공원에

배롱나무 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네

 

화무는 십일홍이라 했거늘

무더위 속에서 석달 열흘 꽃피우는 절절함이여

처녀의 한이 서린

요염한 자태로 꽃 피우며

황홀경에 빠지게 하니

옛 혼령 뚜벅뚜벅 걸어와

한동안 유희의 시간을 내려놓을 것도 같은데

 

하마 후두득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 보구려

 

백 일간 치성으로 만발한 꽃이여

 

어느덧 꽃숭어리

! 떨어지며 발등을 가로지르네

 

---

*개화공원 : 충남 보령시에 있는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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