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24호의 시

김창집 2016. 11. 13. 18:36


산림문학’ 2016년 가을겨울호가 나왔다.

이번 호는 2016년 제5회 녹색문학상 특집으로

수상작품 이순원의 장편소설 백년을 함께한 친구 - 나무

그의 근작 소설 나무와 걷는 소년을 실었다.

 

초대시로는 나태주의 풀꽃7,

문학강좌는 임보의 시창작론13’과 홍성암의 소설론 산책11’,

산림문학이 만난 문인으로 박명자의 나무의 표정7,

산림문학 기행은 김경식의 예천 석송령과 황목근’,

그 외 많은 시, 수필 등이 실렸다.

 

이 중 시 8편을 옮겨

사진을 곁들인다.

     

 

때죽나무꽃 - 김귀녀     


때죽나무 꽃잎을 지저 밟으며 유왕골* 계곡을 오른다

지천에 깔린 때죽나무꽃 신발에 짓이겨진다

이름도 평범하여 때죽나무 때 묻은 둥치에서 흘리는 하얀 웃음 걸음마다 까맣게 흘린다

낮아지라고 당부하신 그 분 말씀 따르려는 듯, 고개 숙여 핀 꽃

십자가에 온 몸 매다신 예수님이 그러하셨지

땅에 떨어진 때죽나무꽃을 바라본다

온 몸 짓밟히면 그분 뜻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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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왕골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인처동에 있는 계곡

     

 

각을 끌어안는다 - 김금용

 

가파른 산위로 오를수록

너럭바위가 팔 뻗쳐 길을 막는다

제 안에 각을 부수고

잡아당긴다 끌어안는다

길 잃은 이들을 불러들인다

 

너럭바위가 각진 모서리를 끌어안는다

빗물과 짠 눈물바람으로

수직과 수평 틈으로 링거 병을 꽂는다

진달래와 얼레지꽃, 붉은병꽃과 손을 잡는다

황사에 미세먼지에 앞길이 막막해도

도봉산 청계산 관악산 산마다

비집고 들어갈 뜨거운 혈을 만든다

각이 무너진다

진달래 얼레지 산벚꽃 둘레길이 열린다

앞길이 환하게 뚫린다

     

 

가야산에 올라서 - 김영자

 

햇살 속에 서 있는 나뭇잎들

사각사각 넓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서산 가야산에 오르다가

나뭇잎 수만큼의 웃음을 보았다

 

정상에 올라와

살아온 길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웃음의 깊이를 내려놓으며

젖은 발을 푸는 순간에

이 생의 넓이가 같아지는 걸 보았다

 

웃음의 깊이와

걸어온 길의 고요한 족적이

몸 밖으로 나와

수평으로 이동하는 걸 보았다

 

우리는 얼마나 더 이동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산에서 가장 먼 곳까지

   

 

 

섭리攝理 - 김청광

 

새싹은 작지만

봄에는 내 목숨 돋을 곳

새싹에게 묻고 싶네

 

나무는 자라 숲을 이루고

수많은 생명 깃들어 사는데

내 목숨 깃들 곳

숲에게 묻고 싶네

 

영원에서 영원으로 바람이 불고

시인이 시를 쓰다가 푸른 하늘 보는 날

 

내 목숨 어디에 있어야 환할 수 있을까

그 하늘에 묻고 싶네

     

 

벌목숲에서 - 김행숙

 

전라도 완주 벌목 숲에서 오래된 소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큰 숨 한 번 내쉬지 않고 거대한 둥치가 넘어지던 모습은 장엄했다 벌목공들이 잘라내던 엔진 톱 소리, 커다랗게 온 산을 울리고

 

애초에 거기서 싹이 났던 것일까

골짜기 속에 눕기까지 장하게 삼백 년을 지켜온 기상

쿵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체는 땅에 부딪혔다

산산조각 난 햇살이 튀어 달아났다

 

누워있는 소나무들은 할 일을 다 마친 사람 같았다

숙명처럼 대지를 끌어안으며 차지하고 있던 텅 빈 자리

대기 속의 공간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두루미천남성 - 박위순

 

이슬 한 방울 긴 목을 축이고

산 향내 파르르 몸 적시고

우러러 고결한 관 머리에 얹고

 

여긴가 저긴가 사뿐사뿐

 

샘물 같은 눈빛으로

순결한 깃털 나부끼며

천 년을 노니느뇨, 그대는

 

 

 

하늘소유권 - 윤준경

 

고백하건데

나 욕심이 참 많다네

겉으로 초연한 척 내숭 떨지만

저기 한적한 마을에

집 한 채, 땅 몇 뙈기

왜 갖고 싶지 않겠나

 

마음 한 겹 접어두고 돌아오는 길

눈앞의 하늘은 그늘의 부피만큼 맑았네

저기 무엇이 있어 저리 푸르고 환할까

움츠린 영혼들이 불 밝히고

행복에 대하여 토론하는 중일까

 

꽃 심고 상추 심고 나무 심는 일,

몸 바쳐 가꿀 육체도 부실하니

벗이여, 그대의 청정한 전답이 잘 보이는

저 하늘을 내 것으로 하겠네

문서가 필요 하겠나, 증인이 필요 하겠나

아무도 탐하지 않는 하늘의 소유권

 

나 쩨쩨한 여자가 되지 않겠네, 원한다면

누구라도 나눠 갖겠네

 

나는 어느새 지상에 없는 부자

높고 깨끗한 저기,

수 만평 하늘의 주인이라네

     

 

밤꽃[栗花] 필 무렵 - 이옥천

 

주인 없는 허전한 방

망월은 창변 틈새로

뒤뜰 밤꽃 그림자 싣고 든다

 

달빛이 싣고 온 내음

익숙한 비린내이지만

너의 그림자 스치는 날이면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내 가시 너무 많아

인정 열정 보이지 않아도

쌀쌀맞은 율방栗房에게도

때가 되면 아람은 벙근다

 

지나간 흔적 없는데

익숙한 체취 얼굴 붉어지고

문풍지 바람에 선잠 깨

이 가슴 밤새 좨 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