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11월호의 시와 단풍

김창집 2016. 11. 6. 21:56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통권 341호가 나왔다.

 

주요 목차와 시 8편을 옮겨

금요일에 찍은 노로오름 단풍과 같이 올린다.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 남대희

*신작시 27- 최승범 임보 정일남 김두환 나병춘 남유정 손현숙 이소암 유진 김경선 석정호 정연홍 채들 김종숙 유정자 이미숙 조성순 김명 민구식 이철경 채영선 김송포

장유정 라윤영 최한나 전정희 조성례

*기획연재 인물시’ - 이인평

*신작 소시집 - 박동남

*테마 소시집 - 마선숙

*시집 해설 - 임채우

*한시한담 - 조영임

    

 

 

첫사랑 - 이무원

 

한평생

사랑이란 이름으로

빛나는 왕관

 

실패로 치부되지 않는

상처

 

어루만질 때마다

피어나는 꽃

    

 

김삼원의 소나무 - 최승범

    -소나무 송

 

가까이 멀리

사방팔방을

 

휘모리장단으로

휘둘러 치는

 

몽글고

섬세한 필흥

 

필력 다함

없어라

        

 

 

백모란 - 임보

 

꽃의 빛깔이 너무 요염해

지상에 유배된 백모란

 

황홀한 빛깔을 다 앗기고

시인의 뜰에 선 맑은 소복이여,

 

흰빛이 이리 고움을

천상이 미처 몰랐구나

 

오늘은 나를 이리 홀렸거니

또 어느 나라로 쫓겨날고!

        

 

억새들 - 정일남

 

표현을 빌린다면 저것은

시간을 이끌고 세상 끝으로 가는 물결이다

 

너는 빗자루로 쓸어버린 것이 많다

하늘은 맑고 수심은 깊다

구름 학파學派들은 한 세기를 보냈고

내 목덜미를 간질이던 바람은 억새 숲으로 숨는다

억새 머리카락은 가을을 휘젓고

나는 생각이 설렌다

말하고 싶은 것은 너희는 방황이 아닌

하나로 의견을 모아 무리를 이뤄

시간의 물살을 헤치고 가는 무죄의 행렬이다

 

찬비 맞는 내 가슴은 흐느낀다

저 하구 쪽으로

수천의 물새 떼가

물밀 듯이 몰려든다

    

 

 

풍경 - 남유정

 

이라는 말

조금 슬픈 이 말을 걸어놓고

문을 닫으며 한 번 흔들고

문을 열며 한 번 흔들었네

이라는 울림 끝에 펼쳐지는 길을 보고

그 길을 걸어가다 돌아오고

아침이면 다시 걸어갔네

이라는 말을 가슴에서 꺼내어

입 안에 굴러보고 다시

가슴에 묻어두었네

 

이라는 말

당신이라는 말

전부라는 말

      

    

 

퇴고推敲 - 이소암

 

소 발톱처럼 뭉툭한 연필심 깎고 또 깎아

 

바늘 끝에 글자를 새겨 넣는 것,

 

그 위에서 글자 스스로 춤추게 하는 것

        

 

출가 - 채들

 

십수 년 키우던 난

불갑사 뒷산에 심어주고 돌아온 저녁

 

어둠이 내려앉은 화분에

빗소리 쌓인다

 

걱정이 비에 젖어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밤

 

이리저리 서성이며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산에 출가시키길 잘했다.

        

 

 

시의 허기 - 유정자

 

하얀 쪽배 위에 어수룩한 나를 싣는다

바다는 푸르고 햇살은 밝은데

망망대해 분이 부셔 눈망울이 시리다

시의 옷자락이 해풍에 펄럭이며 돛대를 만들고

잡히지 않는 무지개 하나

허공에 걸려 등대처럼 반짝인다

 

생의 바다는 경이로워라

수많은 언어들이 조개처럼 재잘대도

건져 올리면 입을 닫고 묵언 수행뿐이다

돌탑을 쌓으려 하나하나 조합해 본들

모래성이 되어 사르르 허물어지는

그 헛헛한 허기 속에도 북극성은 늘

저만치서 빛나고 있다

 

망망대해 흘러 흘러 어느 섬에 닿으랴

바다는 푸르고 태양은 환한데

심장의 고동소리 쿵쿵 마음만 부풀어라

세상을 향한 뱃길을 열어

하얀 쪽배 상기된 시를 실어 나른다

등대를 찾아 북극성을 찾아

 

해풍에 충혈된 눈, 노을처럼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