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기도
한 마리의 작은 멧새처럼
가는 곳마다
세상의 길이게 하옵소서
부르는 것마다
세상의 노래이게 하오며
자랑스레 내 보일만 하진 못해도
날갯짓마다 아름다운 춤사위이게 하옵소서
포로롱 날아간 뒤로는
나뭇가지에 작은 떨림만 남듯
세상을 향해서는
그렇게 조금 떨리는 마음을 주옵소서
잽싸게 오르내리며
꽃의 벌레를 잡아먹듯
내가 목숨을 위해 하는 일이
세상의 향기를 지키는 일이게 하옵소서
날개를 활짝 펼쳐 비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는 곳마다
당신을 향해 발을 모으게 하소서
♧ 사람에게 희망을
말없이 흐르는 강물이나
바람에 흔들리며 서 있는 나무처럼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우울할지라도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면
당신은 희망을 품어도 좋겠습니다
이름 없이 피었다 지는 풀꽃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이 없듯이
하루해를 살다가는 날것 하나도
사랑 아닌 것이 없듯이
마침내 사람이 희망이면
당신은 지금 곧
사랑에 빠져도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아
내 사랑하는 것들아
희망은 언제나 시작이며
사랑은 그 끝입니다
♧ 이제야 마음껏 너로 운다
문득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아
밤새 잉잉거리며 푸르게 떠있던 별처럼
어느 잎새에 맑은 이슬로 맺혔느냐
가슴으로 외우던 노래는 바람이 되어
천 리는 흐르고
뜨겁던 사랑은 붉은 햇살이 되어
불쑥 떠오른다
잠든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하나하나를 낱낱이 이름 불러주며
새로이 품은 소망마다 사뭇 감격해하는 그대여
언제나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나 부재하는 이여
이제야 내가 그리움 따위로
마음껏 울겠다
♧ 연어의 회귀
우리는 지금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등지느러미며, 가슴지느러미며
온 몸이 찢기고 상한 채
그렇게 사뭇 올라가는 것이다
어떤 역사가 우리를 막으며
어떤 사조가 우리를 따르게 하는가
허물을 벗으며, 배가 터지며
우리가 배운 건
법이 아니라 생명이다
한 때 사랑한 세상이나
그 어두운 것들을
우리 안에 끈끈하게 결속된 것들을
다 털어내고 지금
그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자 누구인가
마침내 품어 온 말들을 다 쏟아 내고
힘겨운 사랑을 다 쏟아 내고
이제는 목숨까지 내놓는,
그렇게 철저히 쓰러지는 법을 설한다
♧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뻐꾸기나 꾀꼬리처럼
나는 내 이름을 부르며
울지 못합니다
숨 죽여 속으로 울거나
돌아 앉아 면벽을 한 채
비로소 꺼이꺼이 목을 놓아 웁니다만
도무지 한 번도 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전적으로 울지 못합니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그 공허한 언어가
허위허위 언제 어느 세상에 가 닿겠습니까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들의
아름다운 울음은 노래가 되지만
내 울음은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부질없는 소리일 따름입니다
그것은 한 자락 회오리도 못 되고
서걱이는 나뭇잎 소리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한낱 통곡이나 될 것입니다
♧ 원죄
호젓한 산길에서
산새나
청설모
이름 모를 풀꽃 따위를 만나면
우리 사는 게
죄같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게
죄 같습니다
생각 하나도,
말 하나도,
산길에서 문득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웅웅거리는 산을 바라보면
당신도
나도
오래 오래
죄 같습니다
* 김영천 제6시집 ‘삐딱하게 서서’(창조문학사, 2016.)에서
사진 : 가을 들꽃 '절굿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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