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우리詩' 12월호의 시와 호랑가시나무

김창집 2016. 12. 3. 00:42


우리12월호가 배달되었다.

통권 342호가 되는 이번 시지의 주요 목차는 다음과 같다.

 

*권두 에세이/ 채들

*신작시 25/ 이생진 홍해리 권순자 안영희 김인구 송문헌 김신영 윤석주 최상호 이민숙 박은우 이범철 이재부 서금복 강성남 천지경 박홍 임채우 김혜숙 마선숙 우정연 채영조 김혜천 박인옥 강주

*기획연재 인물 / 이인평

*신작 소시집/ 최한나

*테마 소시집/ 남대희

*시집 서평/ 조영임

*나의 애송시/ 유정자 김명희

*시 에세이/ 김승기 이동훈

*한시한담/ 조영임


시 몇 편을 옮겨

호랑가시나무와 같이 싣는다.

   

   

꽃 때문에 - 이생진


꽃 때문에 걸었다

꽃 때문에 시름을 덜었다

꽃 때문에 아내를 잊었다

꽃 때문에

꽃 때문에

꽃 때문에 하다가 하루가 갔다

가면서 스마트폰에 담았다

몰래 담 넘어온 꽃도 있다

몰래 넘어온 꽃이 더 예쁘다

왜 넘어왔을까

 

 

동병상련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194

 

요양원이 싫다고 돌아온 아내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아내

간병인 돌아간 후 뒤처리하고

설거지하다 화가 나서

그릇을 내던져도 깨지지도 않는다

다 늙어서 아내 뒷수쇄하는 일

여든여덟에 기가 찰 노릇이지

사는 게 하도 재미가 없어

어제는 어머니 산소에 가서

막걸리 따라 놓고 한참 울었어!”

미수米壽의 시인은 말을 더듬는다

우리는 띠동갑

일흔여섯도 집사람 뒷바라지가 힘든데

하루에도 몇 차례 기저귀 빠는 일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세요!”

처녀들이야 한 달에 한 번이니 괜찮지만

하루에도 몇 개씩 버리니

그게 돈이 얼마냐며

일회용은 싫다니 이걸 어쩌나?”

오늘도 아내의 기저귀를 빨다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노시인의 말에 나도 기가 막힌다

막걸리 한잔 벌컥,

핑 도는 눈물로 울컥, 또 한잔 벌컥!

   

 

 

그립습니다 - 송문헌

 

달빛 쏟아지는 신작로

인적 없는 한밤중 초겨울

그 길에 말없이 앞서가던

그 분은 아직도 겨울이 오면

그곳에서도 홀로 그 길을 기억하실까

오십 년도 더 지난 그 세월을

 

미루나무 늘어선 정용에서 솔터골

내 집으로 가는 길 함께 걷던

그 날들이 불현 떠오르는

 

분이 누님, 가슴 시리게 그립습니다

      

 


강대나무 사랑 - 윤석주

 

가슴에 옹이처럼 박힌 이루지 못할 사랑이 있어 죽어서도 눕지 못한다. 그대를 바라보는 하루가 쌓여 천년이 되는 날 지지껍질처럼 덕지덕지 붙은 잔챙이 그리움 같은 것은 털어버리고 흰 뼈로 서서 끝나지 않는 미증유未曾有 사랑을 반추하면서 기다리리라.

     

 

희수喜壽 - 이재부

 

내 나이 77

희수라 하는데

왜 철이 나지 않는가?

 

아직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발버둥치고 울면

캄캄한 밤에도 나를 업고

마당에 나가 별을 세던

 

아버지도 보고 싶다

 

세월의 바다는 맹인의 바단가

어머니! 그 소리만 들어도

, 눈물이 나는지

 

희수喜壽

나잇값하기가 힘든 나인가 보다.

     

 

햇살을 닦다 - 강성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닦는다

 

책들 사이에

낡은 햇빛이 뽀얗게 앉아 있다

 

늘 닦아내건만

다시 슬픔처럼

내려앉는 먼지들

 

살아간다는 건 먼지를

닦아내는 것과 같은 것일까

 

닦아낸 창틀에 내 얼굴이 또 쌓이고 있다

     

 

- 천지경

 

예쁜 꽃이 지천이야

혼자 보기 아깝다

산에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부재중 전화 2통과 함께

벗이 남겨놓은 메시지

 

굉음 속 일하다 잠시 들여다본 전화기

예쁘게 핀 꽃보다 그녀가 더 보고 싶었다

   

 

 

갯메꽃 - 김혜천

 

바람이 오른쪽으로 붓질을 하면

서로를 불러들여 언덕을 이루고

왼쪽으로 붓질을 하면

순간 흩어지는 풍성사구

 

물 한 방울 고이지 않는 모래 언덕에

뿌리를 내렸다

 

기댈 곳 없는 무지렁이들이

소금기 허연 무명치마에

각혈하듯 뱉어 낸 몇 섬의 모래

험준한 산을 넘는 야크처럼

바다를 향해 내딛는 눈물의 서사

 

길 없는 길을 걷는 발자국마다

아프게 피어나는 어린 꽃잎들

꽃 진 자리마다

여인들의 한이 염주알보다 검다

 

밀려오던 파도도 안쓰러워

오던 길 되돌아가고

바람이 물결무늬로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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