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 12월호가 배달되었다.
통권 342호가 되는 이번 시지의 주요 목차는 다음과 같다.
*권두 에세이/ 채들
*신작시 25인 選/ 이생진 홍해리 권순자 안영희 김인구 송문헌 김신영 윤석주 최상호 이민숙 박은우 이범철 이재부 서금복 강성남 천지경 박홍 임채우 김혜숙 마선숙 우정연 채영조 김혜천 박인옥 강주
*기획연재 인물 詩/ 이인평
*신작 소시집/ 최한나
*테마 소시집/ 남대희
*시집 서평/ 조영임
*나의 애송시/ 유정자 김명희
*시 에세이/ 김승기 이동훈
*한시한담/ 조영임
시 몇 편을 옮겨
호랑가시나무와 같이 싣는다.
♧ 꽃 때문에 - 이생진
꽃 때문에 걸었다
꽃 때문에 시름을 덜었다
꽃 때문에 아내를 잊었다
꽃 때문에
꽃 때문에
꽃 때문에 하다가 하루가 갔다
가면서 스마트폰에 담았다
몰래 담 넘어온 꽃도 있다
몰래 넘어온 꽃이 더 예쁘다
왜 넘어왔을까
♧ 동병상련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ㆍ 194
“요양원이 싫다고 돌아온 아내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아내
간병인 돌아간 후 뒤처리하고
설거지하다 화가 나서
그릇을 내던져도 깨지지도 않는다”고
다 늙어서 아내 뒷수쇄하는 일
여든여덟에 기가 찰 노릇이지
“사는 게 하도 재미가 없어
어제는 어머니 산소에 가서
막걸리 따라 놓고 한참 울었어!”
미수米壽의 시인은 말을 더듬는다
우리는 띠동갑
일흔여섯도 집사람 뒷바라지가 힘든데
하루에도 몇 차례 기저귀 빠는 일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세요!”
“처녀들이야 한 달에 한 번이니 괜찮지만
하루에도 몇 개씩 버리니
그게 돈이 얼마냐며
일회용은 싫다니 이걸 어쩌나?”
오늘도 아내의 기저귀를 빨다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노시인의 말에 나도 기가 막힌다
막걸리 한잔 벌컥,
핑 도는 눈물로 울컥, 또 한잔 벌컥!
♧ 그립습니다 - 송문헌
달빛 쏟아지는 신작로
인적 없는 한밤중 초겨울
그 길에 말없이 앞서가던
그 분은 아직도 겨울이 오면
그곳에서도 홀로 그 길을 기억하실까
오십 년도 더 지난 그 세월을
미루나무 늘어선 정용에서 솔터골
내 집으로 가는 길 함께 걷던
그 날들이 불현 떠오르는…
분이 누님, 가슴 시리게 그립습니다
♧ 강대나무 사랑 - 윤석주
가슴에 옹이처럼 박힌 이루지 못할 사랑이 있어 죽어서도 눕지 못한다. 그대를 바라보는 하루가 쌓여 천년이 되는 날 지지껍질처럼 덕지덕지 붙은 잔챙이 그리움 같은 것은 털어버리고 흰 뼈로 서서 끝나지 않는 미증유未曾有 사랑을 반추하면서 기다리리라.
♧ 희수喜壽 - 이재부
내 나이 77세
희수라 하는데
왜 철이 나지 않는가?
아직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발버둥치고 울면
캄캄한 밤에도 나를 업고
마당에 나가 별을 세던
아버지도 보고 싶다
세월의 바다는 맹인의 바단가
어머니! 그 소리만 들어도
왜, 눈물이 나는지
희수喜壽도
나잇값하기가 힘든 나인가 보다.
♧ 햇살을 닦다 - 강성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닦는다
책들 사이에
낡은 햇빛이 뽀얗게 앉아 있다
늘 닦아내건만
다시 슬픔처럼
내려앉는 먼지들
살아간다는 건 먼지를
닦아내는 것과 같은 것일까
닦아낸 창틀에 내 얼굴이 또 쌓이고 있다
♧ 벗 - 천지경
예쁜 꽃이 지천이야
혼자 보기 아깝다
산에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부재중 전화 2통과 함께
벗이 남겨놓은 메시지
굉음 속 일하다 잠시 들여다본 전화기
예쁘게 핀 꽃보다 그녀가 더 보고 싶었다
♧ 갯메꽃 - 김혜천
바람이 오른쪽으로 붓질을 하면
서로를 불러들여 언덕을 이루고
왼쪽으로 붓질을 하면
순간 흩어지는 풍성사구
물 한 방울 고이지 않는 모래 언덕에
뿌리를 내렸다
기댈 곳 없는 무지렁이들이
소금기 허연 무명치마에
각혈하듯 뱉어 낸 몇 섬의 모래
험준한 산을 넘는 야크처럼
바다를 향해 내딛는 눈물의 서사
길 없는 길을 걷는 발자국마다
아프게 피어나는 어린 꽃잎들
꽃 진 자리마다
여인들의 한이 염주알보다 검다
밀려오던 파도도 안쓰러워
오던 길 되돌아가고
바람이 물결무늬로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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