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영미 시집 '물들다'에서

김창집 2016. 11. 18. 22:26


날개

 

새가 살았을 때는

바람을 품어 허공을 날더니만

 

새가 죽었을 때는

바람이 불어와 몸을 흔들어도

허공을 알지 못한다  

 

   

그냥

 

어떤 생각도 하기 싫어서

 

얼마가 되는지 모를

길을

마냥 걸었다

 

뒤따르는 것은

오직

나의 그림자뿐

     

 

그림자 1

 

숨을 쉬는 것들에게는

극한의 고통이 하나씩 있어

혼자임을 잊게 할

극진한

나의 내가 있어야 했다

신도

외로움에 지쳐 자신을 닮은

사람을 만들었다지 않은가

사람이었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천형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지상의 모든 별들에게

 

밤과 낮을 더불어

삶을 넘어 죽음의 순간까지도

악착같이 나를 지켜줄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나의 그대

   

 

 

독백

 

미친 영혼들의

적막한 노래

 

멍석 한 장 없이

읊조리는

모노배우의 탄식

 

술자리에서

내뱉는

허튼소리만도

못한 것

 

자신도 모르고

자신도 헷갈리는

생각 없이 내뱉는

한숨

 

그보다 못한

시인들의 곡조 없는

중얼거림

 

 

산수국

 

한라산 둘레 깊은 길섶에

푸른 산수국은 안개비에 젖어도

바람에 흔들린다

잘디잘게 부서진 꽃잎만으로는

애처로운 사연 다 전할 수 없어

제 마음 아닌 마음을

덧대어 붙이고

 

사는 게 다 그렇지

어찌 다 보여주며 살아졌던가

부서지고 멍든 가슴은

헛꽃 몇 장 밑에 숨겨두고

헤살헤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잔바람에도 파르르 떨리는

헛꽃이 되어

푸른 심장이 되어

   

 

 

압화

 

누구의 상상이었던가

물관 속에 흐르던 투명한 사랑을

섬뜩하게 잘라 비끄러맨

멈춤

 

멈춰진 시간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너

그러니까 이생에서 단 하나

너의 가슴에서 지지 않는

꽃이고 싶다

 

그대 앞에서

바스러져버리는 먼지가 될망정

잊히지 않는

그대의 사랑이고 싶다

     

 

옹이

 

너에게 있어 가장 단단한 심장이고 싶었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가장 맑은 한 점

 

너에게로 향하던 고집스런 마음의 길

      

 

 

산자고

 

나른한 현기증이 몸속을 파고들어

 

울렁이는 봄날

 

죽은 자의 반듯한 이마 위에서

 

하늘하늘한 빛을 온 몸에 받아들고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춤사위로

 

다시 생명을 피워 올리는

 

그대는

 

살아야했음으로 죄가 필요했던

 

지상의 모든 어리석은 삶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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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시집 물들다’(리토피아, 2016)에서

사진 : 지난 12일 광령천 계곡에서 본 가을의 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