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영호의 시와 무밭

김창집 2017. 1. 9. 08:12



요즘 무값이 너무 올랐다고

이곳저곳에서 난리네요.

 

지난 7일 토요일

백약이오름에 시산제 하러 갔다가

오름 입구 무밭에

이렇게 눈 맞은 무가 많길래

데리고 왔어요.

 

오늘 아침 국거리나

반찬거리 없으신 분들

하나씩 쑥쑥 뽑아가세요.

 

 

별도봉을 오르며

 

가파르지 않는 삶이 누군들 없겠냐만

별도봉 오르는 길이 오늘 따라 버거운 건

자성의 칼날 앞에 선

얼룩진 삶 때문인가

그래도 어쩔 건가 녹슬면 안 되겠지

늘 깨어있기 위해 바닷물이 출렁이듯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끌어주는 나무들

     

 

개나리야 개나리야

 

  섣달에도 꽃을 피운

  개나리야, 개나리야

 

  미쳤니, 내가 왜 미쳐

  봄여름 감고 풀며 멋지게 살았어야 가을엔 붉은 옷마저 다 털고 새봄을 위해 겨울잠에 푹 빠지려는데 모든 쇳덩이가 누비는 하늘과 땅 바다는 계절병이 들었는지 빙하가 풀리고, 더운 바람만 부니

 

  그러니 난들 어쩌겠니

  잠잘 수가 없어야

   

 

 

야사夜射

 

한가위 보름달이 숨바꼭질하는 밤 활터에

허공에 길이나 내자고 욕심의 끈을 풀어

 

무심코 보낸 화살은 아무런 기척이 없네

 

언제 생각대로 관중貫中 소리 들어봤나

 

길을 찾는 맹인처럼 컴컴한 과녁을 향해

 

또 다시 시위를 당기네 퉁, 하고 답하네

   

 

 

구멍 소고小考

 

구멍에서 나와서 구멍으로 들어가는

 

구멍에서 들어가서 구멍으로 나오는

 

개미들 긴 행렬의 역사役事

 

새 구멍을 파고 막는

 

여닫는 삶의 뿌리 산, 바다 가릴 것 없이

 

큰 구멍 작은 구멍 들고나는 바람의 손

 

저승 욕망을 위한

 

허방만을 집고 있다

   

 

 

나사

 

제멋대로 살아야 한다고 때때로 말하지만

네 삶을 들여다보면 헐거운 적 너무 많아

적당히 조여주고 싶다

주제 파악하라고

그러나 한량없이 조이고 조인다면

여유의 손길 하나 건네 줄 수 없어

적당히 풀어주고 싶다

꽉 조인 너를 보면

   

 

 

봄바람

 

병아리 재잘대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곱슬머리 한 아이에게 담임이 물었지요

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봄바람인데요

너의 성이 김씨니까 김봄바람?

그냥 아빠 친구들이 봄바람이라고 불러요

때로는

카사노바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요

 

 

*오영호 시집 귤나무와 막걸리’(정은출판, 2016.)에서

                                   사진 : 백약이오름 입구 무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