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값이 너무 올랐다고
이곳저곳에서 난리네요.
지난 7일 토요일
백약이오름에 시산제 하러 갔다가
오름 입구 무밭에
이렇게 눈 맞은 무가 많길래
데리고 왔어요.
오늘 아침 국거리나
반찬거리 없으신 분들
하나씩 쑥쑥 뽑아가세요.
♧ 별도봉을 오르며
가파르지 않는 삶이 누군들 없겠냐만
별도봉 오르는 길이 오늘 따라 버거운 건
자성의 칼날 앞에 선
얼룩진 삶 때문인가
그래도 어쩔 건가 녹슬면 안 되겠지
늘 깨어있기 위해 바닷물이 출렁이듯
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끌어주는 나무들
♧ 개나리야 개나리야
섣달에도 꽃을 피운
개나리야, 개나리야
미쳤니, 내가 왜 미쳐
봄여름 감고 풀며 멋지게 살았어야 가을엔 붉은 옷마저 다 털고 새봄을 위해 겨울잠에 푹 빠지려는데 모든 쇳덩이가 누비는 하늘과 땅 바다는 계절병이 들었는지 빙하가 풀리고, 더운 바람만 부니
그러니 난들 어쩌겠니
잠잘 수가 없어야
♧ 야사夜射
한가위 보름달이 숨바꼭질하는 밤 활터에
허공에 길이나 내자고 욕심의 끈을 풀어
무심코 보낸 화살은 아무런 기척이 없네
언제 생각대로 관중貫中 소리 들어봤나
길을 찾는 맹인처럼 컴컴한 과녁을 향해
또 다시 시위를 당기네 퉁, 하고 답하네
♧ 구멍 소고小考
구멍에서 나와서 구멍으로 들어가는
구멍에서 들어가서 구멍으로 나오는
개미들 긴 행렬의 역사役事
새 구멍을 파고 막는
여닫는 삶의 뿌리 산, 바다 가릴 것 없이
큰 구멍 작은 구멍 들고나는 바람의 손
이ㆍ저승 욕망을 위한
허방만을 집고 있다
♧ 나사
제멋대로 살아야 한다고 때때로 말하지만
네 삶을 들여다보면 헐거운 적 너무 많아
적당히 조여주고 싶다
주제 파악하라고
그러나 한량없이 조이고 조인다면
여유의 손길 하나 건네 줄 수 없어
적당히 풀어주고 싶다
꽉 조인 너를 보면
♧ 봄바람
병아리 재잘대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
곱슬머리 한 아이에게 담임이 물었지요
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봄바람인데요
너의 성이 김씨니까 김봄바람?
그냥 아빠 친구들이 봄바람이라고 불러요
때로는
카사노바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요
*오영호 시집 ‘귤나무와 막걸리’(정은출판, 2016.)에서
사진 : 백약이오름 입구 무밭.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순진 첫 동시집 '향나무 아파트' (0) | 2017.01.15 |
---|---|
그림자에게 길을 묻다(김내식) 외 (0) | 2017.01.13 |
'새해 새벽에 쓰다' 외 - 홍해리 (0) | 2017.01.07 |
'우리詩' 343호의 시와 흰광대나물 (0) | 2017.01.05 |
김성현 시집 ‘국화향이 나네요’ (0) | 2017.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