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 첫 동시집
‘향나무 아파트’가 나왔다.
‘아동문예’ 문학상으로 동시를 쓰기 시작해,
‘시인정신’에선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자작나무 카페’와
‘노란 환상통’이 있다.
현재,
제주아동문학협회 사무국장,
제주작가회의 회원,
한라산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향나무 아파트
층층이 향기를 달고 살아요.
층층이 바람을 달고 살아요.
층층이 초록 대문
초록 지붕
초록 유리창
손 닿는 곳마다
초록이 묻어나요.
울 할머니 다녀가시면
할머니 머리카락도 초록으로
변할까요?
우리 반 짱 서은이 질투하는
이 시커먼 마음도
초록이 될까요?
향나무 아파트에 살게 되면
욕심쟁이도
도깨비도
착해질 것 같아요.
향기에 씻겨서
바람에 씻겨서.
♧ 파도타기
푸른 악어 떼 우루루 몰려온다.
몸을 가뿐히 낮추고
휙 날아서 악어 등 위로 올라간다.
악어 등은 해적선처럼 아슬아슬해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동맹 맺고
얍!
다시 얍얍!
반복되는 제압에 항복할 줄 알았는데
점점 거세어지는 악어의 하얀 이빨
노을이 심판 내리기 전까지
불붙은 악어와 한판
악어 떼 물러가자
온몸엔 푸른 멍
악어는 떼어 냈는데
바다가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시소의 마음
할머니는 한 번만, 하고
아이는 한 번 더, 하고
할머니는 힘들어, 하고
아이는 아이 좋아, 하고
시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 불후의 명작
비가
땅 위에 그림을 그린다.
동그랗고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멋진 필체로
그 안에 물방울무늬 새긴다.
빗살무늬 토기보다
민무늬 토기보다
더 신비한 작품
하나 둘 셋
하루 종일 세어도
끝나지 않는
비의 그림들
♧ 화분 빌라
우리 빌라 입구 화분엔
해바라기 두 그루
쇠비름
코스모스
달개비
집 없는 영세민
모두 무료 분양한
화분 빌라
문 닫고
입 막고 사는
우리 빌라보다
훈훈하다.
♧ 다문화 가족
엄마가
다육이와 선인장
입양했다.
다희야! 선이야!
부르면
집 안이 꽉 찬다.
사랑초 이름은 사랑이
달개비 이름은 달비
돌나물 이름은 물나
채송화 이름은 송화
작디작은 애들도
자기소개 한다.
민족이 다르다고
가족이 될 수 없는 건 아니야
엄마는 불어난 식구
토닥토닥
마음 내준다.
♧ 공감
학교 가는 길목
키도 닿지 않은 높은 담벼락 끝
선인장 화분
나는 까치발로
선인장과 인사하고
선인장은 고개 늘어뜨려
나에게 손 내민다.
높은 것과 낮은 것의
화음
조금만 위로
조금만 낮게
다가가면 돼.
*양순진 첫 동화집 ‘향나무 아파트’(책과나무, 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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