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새해 새벽에 쓰다' 외 - 홍해리

김창집 2017. 1. 7. 21:44



새해 새벽에 쓰다

 

꽃을 만나거든 지는 걸 보고,

 

벼랑 끝에 몰리면 뛰어내려라.

 

새는 바닥을 쳐야 날아오르고,

 

물결에 흔들리며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한운야학 은산난정閒雲野鶴隱山蘭丁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처럼이나

 

들을 유유히 거니는 학처럼이나

 

보이지 않는 먼 산속 깊숙이서

 

난과 함께 사는 사나 하나 있네.

 

 

 

비에도 귀가 있다

 

씨앗들 옷 벗고 솟아오르는 소리

 

나무 가지마다 눈 돋아나는 소리

 

비가 그 소리를 듣고 내려오신다

 

하늘은 눈이 커서 다 보고 계신다

     


 

붓꽃[筆華]

 

눈멀어 듣고 귀먹어 보아라

 

세상이 어떠하신가?

 

지옥인가, 극락인가?

 

꽃은 네 마음자리에 핀다!

   


 

 

얼음폭포

 

천년을 소리쳐도 알아듣는 이 없어

 

하얗게 목이 쉰 폭포는

 

내리쏟는 한 정신으로

 

마침내 얼어붙어 바보 경전이 되었다.

   


 

 

구멍

 

호수가 꽝꽝 얼어붙어도

 

한 옆엔 얼지 않는 구멍이 있다

 

물고기들 숨 막힐까 봐

 

발딱발딱 숨쉬는 구멍이 있다.

     


 

지금 여기

 

마음도 조금쯤은 비워 두어라

 

가득 채운 다음엔 자리가 없어

 

더 귀한 사랑은 어디에 모시랴

 

비어 있어 넉넉한 저 하늘이여.

 


 

 

 

우주를 보기 위하여 하느님은 수많은 겹눈을 박아 놓고 있다.

 

하늘이 펼친 그물눈 사이로 눈빛은 눈이 되어 지상에 쌓인다.

 

땅 위의 시인들은 그것을 주어 모아 한 편의 시를 엮고 있다.

 

그래서 시를 읽는 눈빛 맑은 사람들 가슴속에는 별이 빛난다.

 

 

 * 홍해리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에서

           사진 : 기온이 내려가지 않은 날씨에 요즘 한창 피어나는 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