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새벽에 쓰다
꽃을 만나거든 지는 걸 보고,
벼랑 끝에 몰리면 뛰어내려라.
새는 바닥을 쳐야 날아오르고,
물결에 흔들리며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 한운야학 은산난정閒雲野鶴隱山蘭丁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처럼이나
들을 유유히 거니는 학처럼이나
보이지 않는 먼 산속 깊숙이서
난과 함께 사는 사나 하나 있네.
♧ 비에도 귀가 있다
씨앗들 옷 벗고 솟아오르는 소리
나무 가지마다 눈 돋아나는 소리
비가 그 소리를 듣고 내려오신다
하늘은 눈이 커서 다 보고 계신다
♧ 붓꽃[筆華]
눈멀어 듣고 귀먹어 보아라
세상이 어떠하신가?
지옥인가, 극락인가?
꽃은 네 마음자리에 핀다!
♧ 얼음폭포
천년을 소리쳐도 알아듣는 이 없어
하얗게 목이 쉰 폭포는
내리쏟는 한 정신으로
마침내 얼어붙어 바보 경전이 되었다.
♧ 구멍
호수가 꽝꽝 얼어붙어도
한 옆엔 얼지 않는 구멍이 있다
물고기들 숨 막힐까 봐
발딱발딱 숨쉬는 구멍이 있다.
♧ 지금 여기
마음도 조금쯤은 비워 두어라
가득 채운 다음엔 자리가 없어
더 귀한 사랑은 어디에 모시랴
비어 있어 넉넉한 저 하늘이여.
♧ 눈ㆍ눈ㆍ눈
우주를 보기 위하여 하느님은 수많은 겹눈을 박아 놓고 있다.
하늘이 펼친 그물눈 사이로 눈빛은 눈이 되어 지상에 쌓인다.
땅 위의 시인들은 그것을 주어 모아 한 편의 시를 엮고 있다.
그래서 시를 읽는 눈빛 맑은 사람들 가슴속에는 별이 빛난다.
* 홍해리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에서
사진 : 기온이 내려가지 않은 날씨에 요즘 한창 피어나는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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