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매
늦봄이라 서둘렀나
황매화 어룽진 눈물
햇살이 쏟아진 오월
지은 죄도 사할 것 같은
꽃잎이 사방 날리는, 아품도 꾹 참는다
♧ 갯방풍
해안도로에 편입되어, 사라진 이호 방파제
해안가 뿌리내렸던 아기 손바닥 갯방풍
매립 땅 발걸음 옮길 때 울음소리 들렸다
장맛비가 산중턱 건천에서 흘러들 듯
왼편 가슴 기울어져 절로 일던 네 생각
늦은 밤 가로등 불빛, 상처인 듯 아리다
수장을 치러낸 듯 꽝꽝 다진 시멘트 바닥
몸이 더 납작해졌을, 못 일어났을 갯방풍
새벽녘 바다 쪽으로 끝내 길 나설 것 같다
♧ 길상사 능소화
외진 도량
별채 꽃들
범문에 귀 기울여
극락전 먼발치서
담장 넘는 절 공양
큰 스님
차마 못 뵈네
뙤약볕에 붉게 타네
♧ 울릉도 땅나리
소금기 밴
칠월 볕에
묵묵히 고개 숙여
언덕배기 빙 둘러
한 뼘 한 뼘
내려선
함부로
울지도 않는
동해 바다 붉은 섬
♧ 선인장
꽃!
하고 주웠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 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내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 바람꽃
히말라야 산맥을 건너온 눈발이었나
삼월의 골짜기 숲 콧물 데데한 그 아이
언 꽃에 고개 숙이니,
눈가를 툭 친다
♧ 으아리
볕살에 등 따갑던 돈대산 등성이서
발걸음 붙드는 한줄기 저 바람결
산자락
파도쳐 올린
먼 바다 그리움 같은
♧ 원추리꽃
바다에
이르지 않으리라던
맹세 두고
안개비속 저 홀로
붉게 필
다짐 두고
보목동
산 일번지로 와
섶섬 앞에 흔들린다
*김윤숙 ‘봄은 집을 멀리 돌아가게 하고’(현대시조 100인선, 고요아침, 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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