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윤숙 꽃시 모음

김창집 2017. 1. 26. 19:34



황매

 

늦봄이라 서둘렀나

황매화 어룽진 눈물

 

햇살이 쏟아진 오월

지은 죄도 사할 것 같은

 

꽃잎이 사방 날리는, 아품도 꾹 참는다


     

 


 

갯방풍

 

해안도로에 편입되어, 사라진 이호 방파제

해안가 뿌리내렸던 아기 손바닥 갯방풍

매립 땅 발걸음 옮길 때 울음소리 들렸다

 

장맛비가 산중턱 건천에서 흘러들 듯

왼편 가슴 기울어져 절로 일던 네 생각

늦은 밤 가로등 불빛, 상처인 듯 아리다

 

수장을 치러낸 듯 꽝꽝 다진 시멘트 바닥

몸이 더 납작해졌을, 못 일어났을 갯방풍

새벽녘 바다 쪽으로 끝내 길 나설 것 같다


     


 

길상사 능소화

 

외진 도량

별채 꽃들

 

범문에 귀 기울여

 

극락전 먼발치서

담장 넘는 절 공양

 

큰 스님

차마 못 뵈네

 

뙤약볕에 붉게 타네


   

 


울릉도 땅나리

 

소금기 밴

 

칠월 볕에

 

묵묵히 고개 숙여

 

언덕배기 빙 둘러

 

한 뼘 한 뼘

 

내려선

 

함부로

 

울지도 않는

 

동해 바다 붉은 섬

     



 

선인장

 

!

하고 주웠더니

손에 가시가 박혔다

 

바닷가 소금기 밴

손바닥 선인장

 

눈 맞춘

붉은 열매를

살짝 댄 게 화근이다

 

사랑도 그러했다

수많은 명주실 가시

 

왼편이 괜찮으면

오른쪽이 더 아렸다

 

자꾸만

가슴 헤집어

눈물 고이게 한다


   

 


 

바람꽃

 

히말라야 산맥을 건너온 눈발이었나

 

삼월의 골짜기 숲 콧물 데데한 그 아이

 

언 꽃에 고개 숙이니,

 

눈가를 툭 친다


     


 

으아리

 

볕살에 등 따갑던 돈대산 등성이서

발걸음 붙드는 한줄기 저 바람결

 

산자락

파도쳐 올린

먼 바다 그리움 같은

   


 

 

원추리꽃

 

바다에

이르지 않으리라던

맹세 두고

 

안개비속 저 홀로

붉게 필

다짐 두고

 

보목동

산 일번지로 와

섶섬 앞에 흔들린다

 

 

   *김윤숙 봄은 집을 멀리 돌아가게 하고’(현대시조 100인선, 고요아침, 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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