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순진 동시 모음

김창집 2017. 1. 25. 08:58


나무의 힘

 

한 그루 나무가

산을 만들고

 

한 그루 바오밥나무가

아프리카를 살려요.

 

한 그루 나무가

바위 뚫어 뻗고

무덤 뚫고

자신 일으켜요.

 

나는 나

무 한 그루

 

나무의 꿈처럼

산이 되고

아프리카 되고

지구의 숨골 되려고요.

     

 

여름 민들레

 

여름 내내

거리는 찜통

 

사람들 나무들

구름도 헉헉

 

개미들도 먹이 모으다 말고

제 집으로 쏘옥 피신 갔는데

 

설설 끓는 시멘트 틈

애써 삐죽삐죽 삐져나와

노란 웃음 짓는 민들레

 

겨울 이겨 내

봄을 노래하던 끈기

 

찜통 여름 이겨 내

가을을 선물하려는 건지

 

이마의 땀 닦아 내며

연둣빛 잎은 더 꼿꼿이

미소는 더 예쁘게

     

 

죄책감

 

학교 가는 길모퉁이 집

돌담 너머 길가로

길게 늘어뜨린 가지

 

쩍 갈라진 무화과 한 개

빠알간 손 흔들며 나를 유혹한다.

 

침 꿀꺽 고여

무화과나무 주변

두리번거리다

 

주인 할머니 헛기침 소리

돌담 넘어와도

대담하게

에잇, 따버린 무화과

 

남몰래 골목길에 숨어

한 입 한 입 베어 먹는데

 

가슴은 쿵쾅쿵쾅

헛가시 따끔따끔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숨 소리

그림자보다 길다.

      

 

 

봄까치꽃 2

 

좋은 소식 오려나.

 

아침부터

공원에 몰려든

까치 떼

 

서로 얼굴 맞대어

무슨 계획 짜는지

속닥속닥

 

어제 짝꿍에게 보낸

러브 레터

답장 받게 해 주려나.

 

까치 떼 옆 나란히 앉아

두근두근

 

봄은 벌써 도착했는데

언제쯤 올까,

너의 마음.

 

  

 

염주괴불주머니

 

외돌개에서 돔베낭골 가는

올레길

하늘하늘 노란 주머니 너무 예뻐서

내 옷에 달려고 뚝, 꺾었다.

 

손에는 노란 꽃 대신

지독한 냄새만 묻었다.

 

바닷바람 이기고

공격하는 곤충들 따돌리려고

독을 달았나 보다.

 

예쁜 건 다 독이 있구나.

 

내 짝꿍 유빈이도 말 걸면

톡톡 가시만 내미는데

 

돔베낭골에서 외돌개 가는 올레길

묵묵히 지키는 장한 지킴이

 

미안해

몰라봐서.

     

 

순비기꽃

 

제주 해안가 모래언덕

보랏빛 숨비기꽃

 

해녀 울 할머니

물질할 때

물길 밝혀주는 등

 

물속 숨죽인 시간

참았던 숨

물 위로 쏟아 낸

해녀 숨비소리

보랏빛으로 망울져

바다꽃 되었지요.

 

효이 효이

울 할머니 숨비소리

 

할머니는 없는데

효이효이

숨비기꽃 숨비소리.

 

 

*양순진 동시집 향나무 아파트’(책과 나무, 2016)에서

         사진 1. 소나무(무등산)   2. 민들레    3.무화과    4. 봄까치꽃(개불알풀)

                6. 순비기 꽃   7.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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