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의 힘
한 그루 나무가
산을 만들고
한 그루 바오밥나무가
아프리카를 살려요.
한 그루 나무가
바위 뚫어 뻗고
무덤 뚫고
자신 일으켜요.
나는 나
무 한 그루
나무의 꿈처럼
산이 되고
아프리카 되고
지구의 숨골 되려고요.
♧ 여름 민들레
여름 내내
거리는 찜통
사람들 나무들
구름도 헉헉
개미들도 먹이 모으다 말고
제 집으로 쏘옥 피신 갔는데
설설 끓는 시멘트 틈
애써 삐죽삐죽 삐져나와
노란 웃음 짓는 민들레
겨울 이겨 내
봄을 노래하던 끈기
찜통 여름 이겨 내
가을을 선물하려는 건지
이마의 땀 닦아 내며
연둣빛 잎은 더 꼿꼿이
미소는 더 예쁘게
노
랑
노
랑
♧ 죄책감
학교 가는 길모퉁이 집
돌담 너머 길가로
길게 늘어뜨린 가지
쩍 갈라진 무화과 한 개
빠알간 손 흔들며 나를 유혹한다.
침 꿀꺽 고여
무화과나무 주변
두리번거리다
주인 할머니 헛기침 소리
돌담 넘어와도
대담하게
에잇, 따버린 무화과
남몰래 골목길에 숨어
한 입 한 입 베어 먹는데
가슴은 쿵쾅쿵쾅
헛가시 따끔따끔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숨 소리
그림자보다 길다.
♧ 봄까치꽃 2
좋은 소식 오려나.
아침부터
공원에 몰려든
까치 떼
서로 얼굴 맞대어
무슨 계획 짜는지
속닥속닥
어제 짝꿍에게 보낸
러브 레터
답장 받게 해 주려나.
까치 떼 옆 나란히 앉아
두근두근
봄은 벌써 도착했는데
언제쯤 올까,
너의 마음.
♧ 염주괴불주머니
외돌개에서 돔베낭골 가는
올레길
하늘하늘 노란 주머니 너무 예뻐서
내 옷에 달려고 뚝, 꺾었다.
손에는 노란 꽃 대신
지독한 냄새만 묻었다.
바닷바람 이기고
공격하는 곤충들 따돌리려고
독을 달았나 보다.
예쁜 건 다 독이 있구나.
내 짝꿍 유빈이도 말 걸면
톡톡 가시만 내미는데
돔베낭골에서 외돌개 가는 올레길
묵묵히 지키는 장한 지킴이
미안해
몰라봐서.
♧ 순비기꽃
제주 해안가 모래언덕
보랏빛 숨비기꽃
해녀 울 할머니
물질할 때
물길 밝혀주는 등
물속 숨죽인 시간
참았던 숨
물 위로 쏟아 낸
해녀 숨비소리
보랏빛으로 망울져
바다꽃 되었지요.
효이 효이
울 할머니 숨비소리
할머니는 없는데
효이효이
숨비기꽃 숨비소리.
*양순진 동시집 ‘향나무 아파트’(책과 나무, 2016)에서
사진 1. 소나무(무등산) 2. 민들레 3.무화과 4. 봄까치꽃(개불알풀)
6. 순비기 꽃 7.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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