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이 봄꽃 시편

김창집 2017. 2. 18. 09:49



동백꽃

 

아름다운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별리(別離)가 있을 뿐

겨울, 동백꽃도 그러하다

핏덩이 같은 꽃송이가

툭 툭

통째로 미련 없이 진다

가장 아름다울 때 나무를 떠난다

그건

꽃피게 해 준 뿌리와 대지에 대한

감사의 입맞춤이다

단단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청춘을 절제하는 향기로운 몸짓이다

 


 

 

그 여자의 수선화

 

그 여자 사는 법,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하며 자라

의로운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

 

그 꽃이 피는 법,

가시덤불 굴헝에서

찬바람 눈보라 맞으면서도

순결한 향기로

피어나는 죄밖에 없다

 

 

 

어떤 꽃은

 

어떤 꽃은 돌 속에 핀다

뿌리도 없이 잎도 없이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다만 스스로를 위해서

드러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춰지기 위해서

오로지 감춰지기 위해서

 

시간도 계절도 개의치 않는

어떤 꽃

가만히

혼자서

스스로 갇혀서

소리와 빛깔과 향기를

손뜨개질 한다

 

그 깊숙한 기쁨

 

 

 

야생란

 

고열로 며칠

앓고 난 후

불순물 태워버려 몸이 가볍다

헐거운 옷을 입고

산으로 간다

바람 불지 않는 날에도

흔들리면서

고요 속으로 걸어들어 가면

맑은 촛불처럼

마음을 밝게 열어주는 꽃

기다리고 있다

산다는 것 괴로움이면서

기쁨인 것을

말없이 내게 들려주고

이슬 걸러 뽑은

침묵의 향기 나누어준다

 

꽃이여

네가 어디 있을지라도

나를 향하여 있다면

맑게 맑게 살 수 있겠네

 


 

 

()

 

나는 숲을 그리워한다

잡목 숲 달려오는 바람소리로

잎을 피우고

고단한 꿈 잠재우노니

 

어디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그리로만 달려

 

적막함은 나에겐

꼭 필요한 사치

 

남향받이 산기슭

새소리에 잠깨고 싶어라

 


 

 

엉겅퀴 꽃

 

누구라 알까

저 엉겅퀴꽃의 외로움을

 

내돋친 가시마다

안으로 끌어안은 사랑이라 하리

저 혼자 삭히는

불같은 마음이라 하리

 

바람만 내달리는

황량한 들판에

헤매는 그리움

묻어본 사람이나 알까

손가락 마디마디

피가 맺히는 사랑을

      

               *김순이 시집 오름에 피는 꽃’(도서출판 제주문화, 2000.)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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