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권경업 봄꽃시편

김창집 2017. 2. 21. 16:57



산벚꽃 필 무렵

 

바람이 없는데도 나는 흔들린다

 

멀리 있는 네가 바람이다

 

꽃은 피지만 불조심해야겠다

     

 

산벚꽃 그늘 아래

 

저건 소리 없는 아우성 같지만, 실은

사랑한다는

너에게 보이려는 소리 없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저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저렇게 환히 웃기까지의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랑히 시라도 몇 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 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글쎄, 금방 글썽글썽해져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부질없다 하다가도

 

부질없다 하다가도

저 윤중로 벚꽃처럼, 화들짝

꽃피우는 게 사랑입니다

그러다가 우수수,

혹은 짧게 혹은 길게

속절없이 스러진다 해서

누가, 사랑 아니라 말하겠습니까

     

 

산벚꽃 꽃비 지는

 

꽃샘잎샘, 떨며 지새우며 피운 꽃잎

우수수 풍편(風便)에 띄워 보내는

속절없는 절망의,

연분홍 연하디 연한 사연

받아 쥐고, 일없다 돌아서는

너는 도대체 누구

     

 

봄볕무게

 

묻지 마라

 

저 화사한 봄볕도, 젠장 맞을

천근처럼 무거워

 

참꽃이 진다

   

 

 

화왕산 참꽃

 

미쳤제, 미쳤어

저 문디 가시나

 

우짤라고 저 지랄이고

아이고! 남사시러버라

     

 

 

같이 죽고 싶으면 오란다

 

온 몸에,

 

확 지른 화왕산 진달래

     

 

적신호

 

하나로는 부족했을까

위험수위라는 적신호

 

좀 흥감스럽긴 했지만

제 속에 것 다 꺼내 밝히다가

 

치사하다, 그래

너 없으면 못살겠냐며

 

늦동백이 한창

꺼지지도 않은 등불 내던지고 있다

     

 

바래봉 철쭉

 

그대 바라볼 수 있음은

소리치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화냥기라구요?

아니에요, 그저 바라만보다 시드는

바래봉 노을입니다

 

아니 노을 같은 눈물입니다

눈물 같은 고백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혹여 키 낮은 풀꽃 아닐런지요

겨우내 아린 꽃물 품어

보아줄 이 있건 없건

조그만 꽃부리 애써 여는 당신은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소리 낮추어 피는 감자난초 족두리풀

듣기에도 어색한 개불알꽃 고슴도치풀

이름 한 번 불릴 일 쉽지 않은 이 땅에

말 없는 노랑제비꽃

연보라 노루귀, 꿩의바람꽃

천덕꾸러기 엉겅퀴 들꽃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움 위해서입니다

무심히 스치는 길섶, 하찮다지만

먼지만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던 날

하늘에는 바람, 땅에는 비 내렸습니다

척박한 땅 싹 틔워 질긴 뿌리 내리라는

그 가르침

 

당신은 누구십니까

 

 

              *권경업 시집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도서출판 전망, 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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