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조카 시집보낸 봄 바다

김창집 2017. 3. 19. 18:30





일찍 가버린 6촌 동생의

마흔도 넘은 큰딸이 시집을 간다 해서

열 일 덮어두고 찾은 고향.

 

생각해보니 동생 결혼 할 때

신부 데리러 갔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벌써 40년도 더 지나

촛불 밝히러 가는 제수씨를 보며

세월이 엄청나게 지났음을 느꼈다.

 

늦은 아침에 밥을 제대로 먹고 가기도 했고

딸만 줄줄이 일곱을 낳고 가버린 동생을 생각하니

밥이 잘 안 먹혀 친척들과 옛일을 추억하며

소주만 큰 잔으로 두 잔 마시고

신부에게 잘 살라는 말 해준 후

추억어린 바닷가로 갔다.

 

내 고향은 전국에서 가고 싶은 해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

조개 딛고, 게 잡고, 고기 낚으며 자란 그 바다는

변함없이 봄을 맞아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위섬,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우럭 구멍은

확인하지 못하고 왔다.

     

 

봄 바다에서 - 김설하

 

은빛 햇살 쏟아지는 바닷가

비단 천 펼쳐 놓고 마름질하는 동안

바위섬에 붙들려 발이 묶인 따개비

실오라기 하나라도 건지고 싶어

파도를 잡았다가 놓치고 또 붙잡아 가슴을 깁고요

배회하는 것들 모두 파도 위에 앉아 나비춤을 춥니다

 

사방은 바다

슬며시 몸 틀어 물비늘 일으키는 봄바람에

코끝 스치는 풋풋한 갯내음

언제까지나 이렇게 붙들려 출렁이고 싶고요

긴 여운을 남기고 떠가는 고깃배에 희망을 싣고

푸른 웃음 쏟아져 넘실대니

어느새 내 속에도 섬 하나 들어앉습니다

   

 

 

회복기回復氣 - 최봄샘

 

그대 옷자락 스치는 소리에

촛불 하나 밝혀 둡니다

 

대지는 이미 봄햇살의 코드를 읽어

수은주 오르기 시작하는 길 따라

아지랑이 물결 밀려오네요

 

얼어붙었던 흑백사진들도

꿈틀거리며 색채옷 입기 시작하고

밤새 떨어진 꽃잎들 떠나간 자리마다

새 꽃멍울 터뜨리는 소리

아침을 끌어당깁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 푹 빠져

잘라냈던 한쪽 귀 다시 붙이고

앓던 침상도 정리하고

봄바다에 작은 배 하나 띄웁니다

 

오랜 친구였던 겨울의 뒷모습에

손 흔들며

나 여기까지 도착했습니다

     

 

아프도록 보고 싶은 - 宵火 고은영

 

어둠 속 희열을 탐하던 소리 들이 쓰러진 위로

땀에 절은 침묵이 여명을 타고

희뿌연 눈을 뜨던 이른 새벽

심상의 바다에서 나는 새로 출산 된

시편으로 영혼을 묶고 그리움의 방죽을 타고 앉아

아버지의 울음을 생각해 냈다

 

평생 볼 수 없었던

그 통렬한 눈물에 흔들리던 사랑을

서럽게 여울지던 가난했든 아버지의 심령을

낡은 외투를 걸치고 많은 주검의 겨울을 지나

파릇파릇 봄이 핀 지경을 향해 걷고 있던

아버지의 봄바다……

 

할머니의 죽음 뒤

아버지는 불효를 통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는 할머니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영정으로 돌아와 앉아 계셨다

세습 되어 이어지던 우리들의 통탄

내 기억의 봄 바다에 언제나 출렁거리는 그리움

아프도록 보고 싶은……

     

 

누가 유리바다에 초록 발자국을 찍는가 - 이소연

 

언제부턴가 내 안 깊숙이

유리바다 출렁인다

하늘과 맞닿아 늘 설레는 곳

밤새 내려왔다가 오르지 못한 뭇별들이

은방울 마구 흔들어댄다.

 

실비단 바람 휘감겨오는 바다에

수묵화로 번지는 거대한 숲,

파도 소리에 맞추어 새들 깃들고

갯내음에 취해 나지막이 피어난 해초들 사이로

갈매기떼 한가로운 봄날 오후

 

뻘밭에 누운 길이 가까워 올수록

섬은 점점 멀어지고

초록은 짙어온다

 

하늘빛에 붙잡힌 바다를 두고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봄바다 울울리 푸른 숲에는

봄햇살 나른하게 몸 풀고 있는 ...

 

당신의 유리바다는 지금 햇빛사냥 중!

     

 

봄바다 파도처럼 흐느낄 수 있음 - 이향아


아침 찻잔에는

사슴의 눈빛 같은 고요가 뜨고

보도에 지는 잎은 느린 박자의 음악

한 생애의 아름다운 축제로 내린다

잡화점 넓은 창유리에 거울 앞인 듯 다가서면

낯선 내 모습이 수면처럼 흔들리는구나

 

다 흔들린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옛날 배운 노래를 조그맣게 흥얼거리면서

여름내 길어진 머리칼 쓸어 넘기면

나는 이제야 돌아오는 사람인가

가슴 밑엔 지워지지 않는 후회도 있다

 

나의 피는 여전히 선홍의 꽃빛깔

산천을 유람하듯 순행하고 있는지

나의 별은 저 하늘에 호젓하게 떠 있는지

나는 지금 옥돌처럼 그윽하여서

천년도 하루같이 바라볼 수 있는지

내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해지는 생각

그러나 나는 아직 꿈을 꿀 수 있음

벼랑에서 부를 이름도 있고

봄바다 파도처럼 흐느낄 수 있음

그리워라 오래된 깃발 하나 들고

오늘 부는 바람 속을 나부끼면서 간다

     

 

고향바다 - 김희경(color)


넌 언제나 거기에 있고

정갈함이 싫증나면

나는 타도록 그리운 너를 찾아나섰다

 

뱃고동은 밧줄 거두기도 전에

겹겹이 내려앉은 세월의 주름을 밀치고

고향으로 바삐 치달았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품 속을 달려

땀에 절은 맨발로

두 팔 벌려 껴안는 어머니시여

 

형편없이 쪼그라든 당신 가슴에

지난날의 상처를 묻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돌아서는 나보다야

 

먼저 쓸쓸히 등을 돌리고

가슴 하나 가득

눈물 그렁이며 서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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