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밤 벚꽃의 변신

김창집 2017. 4. 12. 06:51


어제 동문시장에서

전주에서 온 손님들 만나

술 한 잔 하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이름 날렸던

해병대 4기 삼촌님 제사 보러

전농로로 가다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졌길래

휴대폰으로 정신없이 마구 눌러 집에 와보니

찍을 때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인데,

 

그래도 내가 잡은 장면

세상에 없는 빛의 벚꽃들.

     

 

깊어가는 밤에 벚꽃 피다 - 초암 나상국

 

비가 오고나더니

어스름 달빛 등진

가로등 불빛 속으로

망울망울진 너를 보니

되살아나는

첫날밤

그 설렘

떨리는 손으로

옷고름 풀어헤친

어둠 속 눈 안 가득 들어온

백옥보다 더 도드라진

젖 몽우리

스치기만 하여도 톡 터질 것만

같더니

깊어가는 봄 밤

저 벚나무

절정에 도달한

여인네의

입술 깨물어

붉게 적신 봄의

긴 신음을 토한다

   

 

 

벚꽃 - 김경래

 

희생을 통해 봄을 배달합니다

피는 것이 성숙이 아니라

지는 것이 성숙이라니까요

이른 빗물을 덮어쓰고

내려갈 시간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맥박의 주기만큼

사랑은 꼭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오리라 봐둔 거름 같은 거처

꽃말에 적은 언약대로 곧 돌아올 거에요

 

꽃은 냇물이었습니다

위에 있었으니 아래로 흐를 수 있는 자유

이미 갈 길이 있어 그냥 흐르면 되는 그 일은

내가 떨어져 그제야

봄이 기지개를 활짝 켜는 주기처럼

사람이 돌아올 자리를 펴 주는 일입니다

성숙을 바라면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 말아요.

     

 

벚꽃 그대 - 임영준


내밀한 독백은

이제 그만

 

아름다운 폭발이

버겁다

 

시나브로

달아오르는 햇살 타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와

 

연분홍 절정으로

봄을 들이키는

 

영원을 고대케 하는

벚꽃 그대

   

 

 

벚꽃, 4월의 밤길 - 김용수

 

잿빛 하늘을 송두리째

하얀 꽃무늬로 수를 놓아

잠 못 들게 하는 밤이라도 나는 좋아라.

 

바람결에 춤추듯

하얀 꽃가루 하늘하늘 날리며

향기로 유혹하는 4월의 밤이 나는 좋아라.

 

흐드러지게 펼쳐놓은 길 위로

달그림자 사뿐히 옮겨지면

고운 무늬 지월질라

달빛도 머물더라.

 

꾹꾹 참아 기다려온 지난 일년

빙긋이 피워내는 4월의 밤이면

잔잔한 물결 하느작거리는

평화로운 이 길에

밤늦도록 그대로 머물러라.

     

 

섬진강 벚꽃 - 김윤자

 

옥빛 강가에 내려온

설야의 꽃사슴 신부

수정 눈 단아한 웃음으로

십리 강둑 길에

순결의 등불을 켠다.

지리산이 아버지고

섬진강이 어머니고

재첩잡이 조각배가 낭군이라며

밝은 손길로

사월의 가난한 우수를 잠재운다.

가파른 물살을 피해 던지는

낚싯줄의 연민으로

학의 숨결 닮은 가슴은

하얗게 피어 오르고

낙조를 밟고 선 여문 버선 발

쌍계사 대나무 골과

화개장터 오르내리며

강기슭 어둠을 사르고 있다.

심지 굳은 섬진강 혼으로

타 오르고 있다.

     

 

벚꽃 - 素養 김길자

 

햇살 한 가닥 휘어잡고

봄을 열며

들녘에서 외롭게 피던 날

 

슬픈 미소 보내며

향기로 그림자 찾아

살랑대며 애무하는 바람아

 

표정 지운 꽃들마다

설움 삭이다

눈송이처럼 떨어져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연한 핑크빛

한 아름 담아 보낸다

그리움이 머문 꽃잎 속으로

     

 

벚꽃 2 - 권도중

 

, 아니라 했어요

알기 전에 바람이 멀리 전하기 전에 진짜는 항시 잠시

잠시 핀 무심한 것이라고

봄날에 취한 적막한 저 무명에게였다고

여행 같은 봄 가지 아래 흙에 그냥 낙화했다고 싫다고 했다고

정원에 그림자에게 묻었다고

 

감당 못할 꽃을 어쩌자고 아니라고

다 안다고 암말 말라고 보여주지 않는 내 참 속

西라 말하면 서西로 믿는 당신의 밤을 위해

어둠 속 일시에 보여 드린 거예요

 

내 몸은 빛을 흡수하는 검은 색 껍질로 싸고

그 속에 연한 빛 가득함을 아시는지요

잠긴 날들을 펴서 아득히 보내고 나면

삶을 부데끼며 가지마다 당신 생각은 없지요 세상이

파란 잎들 일상으로 무성히 돋을꺼예요

 

일 년을 참아 일시에 피었다 지는

마음 홀로 피고 지는 봄날이예요

당신 마음 단 삼일만 물들이고 꽃비 꽃비로 가요

, 아니라고 그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사실은...

당신 잘 있지요 저 가요 좋은 날 되길

     

 

밤 벚꽃 - 박태강

 

흰 보라색 겹 벚꽃이

백열등과 함께 어울려

꽃의 터널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

너 모습 보려 밀고 밀어

넓은 윤중재길 모두 막혔네

빛을 타고 흔드는 네 얼굴

마주한 연인들의 넋을 뺏어

가는 듯 머무는 듯 삼경이어라

너의 아름다움 강물 되어 흐르고

빤짝 이는 물 위에 요정처럼

싸늘한 초봄의 한기 녹여 주누나

     

 

밤 벚꽃놀이 - 이명수

 

은 어둠고

은 훤한

이쪽과 저 쪽

오늘의 벚꽃은 지고,

담 너머 영안실靈安室

불빛이 밝다

흰 풀꽃들만 잠들고,

그는 깨어있는 밤

문득, 불 하나 다가와

어두운 내 쪽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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