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강연옥 오한욱 부부시집 '아낌없는 하루'

김창집 2017. 6. 27. 23:58


시인의 말

 

새끼 꼬아 엮듯

 

서로 등 짚으며

한고비 넘어가고

 

가슴 껴안으며

한세상 엮어가는

 

느영나영 아리랑

 

   -강연옥, 오한욱 

 

 

신의 언어 - 강연옥

 

봄날 막 돋아난 잎사귀들이 윤지다

 

저 잎들은

나무가 허공에 써낸 말씀들

그 말씀 따라 부르는 새들의 지저귐

 

그대여, 밤새 젖은 날개 털고

초록의 심연에 도랑도랑 울리는 은종 소릴 들어 보라

말씀들이 그윽해질 때 꽃이 피고

어둠이 돌아와 말씀들이 젖어 적막해질 때도

눈물겹도록 적막해질 때도

꽃향기는 바람 불어 가슴에 철썩이는 파도

 

그대여, 그런 나무 앞에서 우리 모두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지 않겠나

   

   

오름에서 - 강연옥

 

마음에 창이 많은 사람은

바라만 보아도 윤이 난다

 

봄날 오름에도 창이 여럿 생겼다

산자고 민들레 할미꽃들이 환하다

   

 

 

가을 - 강연옥

 

이란 다시 연다는 전제하에

안으로부터 닫기도 한다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네

 

겨우내 빛을 모시고 안을 닦기 위해

나무가 창문을 닫고 있다 


 

 

바람 부는 날 - 강연옥

 

사소한 것에 다쳐 마음에 바람 부는 날

감나무 아래 서니 잎사귀 비비는 소리 크다

 

잎사귀에 걸린 바람 소린가

포르르 어린 잎 하나 떨어질 때 알았다

위태위태 감꽃 떨어질세라

갇힌 바람 건네주려 잎사귀가 통로를 열었다는 것을

 

새끼 누 한 마리 악어에게 물리는 동안

마라 강을 무사히 건너가는 누 떼

우두커니 바라만보는 어미 그 젖은 눈동자

어찌 나무라고 아프지 않으랴

어린 잎사귀 허공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질 때

뿌리에서 울컥 물이 오르지 않았겠는가

산다는 것은 구원의 행진인가

 

내 깊은 곳에도 나무가 자라나 보다

불어서 아프기보다 갇히어 아픈 바람

여린 마음 하나가 흔들리고 있다

     

 

세상 발길들이 - 오한욱

 

산을 오르던 등산객의 발길도

바닷가를 슬렁슬렁 거닐던 늙은 부부의 정담도

비를 맞으러 밖에 내놓았던 화분도

골목에 달라붙던 아이들 발길도

평화식품 앞에 모여 있던 아낙들 수다도

집으로 간다

 

이 세상

모든 발길이 집으로 간다

텃밭 토마토 익으며 땅으로 수그리는 이유이듯

   

 

 

침목沈木 - 오한욱

 

한곳을 향해 달리는 두 발길의 평행선이

맞닿을 땅이 곧 있을 거라는 소망을

잠자면서까지 간직하려 오늘도 두 눈 꼭 감고

기차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합장한 손들

 

그런 줄 알았더니 되레

평행이 어긋나지 않도록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려는

못 박힌 손들 


 

 

맷돌 - 오한욱

 

지그시 얹어놓았지

 

내 몸을 갈아내어

 

너에게 조금씩 넘겨주려

 

몸은 몸끼리

 

마음은 마음끼리

 

돌돌돌 삭삭삭

 

윗니가 아랫니에 말을 걸듯

 

늘 어긋나며 비켜가도

 

제 모습 다듬으며 돌아가는

 

저 가슴 둥근 앉은뱅이 되고 싶어

     

 

사랑치레도롱뇽 - 오한욱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살아가는 꼬리치레도롱뇽은

몸통보다 필요 없이 긴 꼬리를 주체할 수 없는 듯

헤엄치는 모양이 우습기도 하다만 나는

 

당신의 동굴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긴 사랑이

죽음 뒤에도 붙어있는 사랑치레도롱뇽으로 살고 싶다

 

       *강연옥 오한욱 부부시집 - 현대시 시인선 173,

             ‘아낌없는 하루’(한국문연, 2017)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땅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