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한창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무술년(戊戌年) 설날을 맞았습니다.
그 동안 너무 추운 날도 많고
눈도 많이 와서
봄은 아직 멀었는가 했더니,
어제 용담동 올레길을 걷다가
매화를 만났습니다.
그래요.
아무리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들다 해도
꾹 참고 견디면 이렇게 꽃 피는 날이 올 겁니다.
올해랑 차례가 끝나는 대로
조용히 이웃도 돌아보며
따뜻함을 나누는 명절을 보내보면 어떨까요.
시간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아주시는 여러분들께
세배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설날 풍경 - (宵火)고은영
아버지 정갈한 두루마기 앞섶이
유난히 차 보이고
대님 매던 서툰 손놀림에
여명의 장 닭소리 아직 생생한데
희망을 두레질하는 차례상에는
언제나 생소한 얼굴들이
낡은 액자에 오랜 고화로 박힌 채
살폿 웃거나 근엄하다
쪽진 머리 저 여인은 고조 할매
흑백의 두루마기 아스름 저 시무룩한 고조 할배
구레나룻 여덟 팔자 유난히 쌔근한
저 남자 우리 할매 멋스러운 지아비
서른한 살 과부든 우리 할매
할배 바라보는 눈매가 붉어 애처롭다
묵시적 가족사
태어나 얼굴 한번 구경 못했다
피붙이라고 살가운 말 한 마디 없었다
어느 시공에도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고
만날 수 없던 운명 호적에나 묶여 있을까
설날 아침
휘적휘적 저 눈길을 걸어 온 조상들
우리 집 안방에 진귀한 고화 전시에 나란히 앉아
한껏 밝은 얼굴로 따끈한 떡국을 드시는 중
♧ 설날(214) - 손정모
자오선이 평소에 어디를 지나건
솔바람 소리에 깨어나는 산울림처럼
천체는 동에서 서로 기울기 마련이리라.
졸면서도 되풀이되는 타성의 발자취에
결코 이대로 둘 순 없다며
선조들, 지혜의 칼날 갈았네.
정월이 하필이면 겨울인 것은
춘삼월의 환희를 기약함일까?
강가에 드리워진 물안개처럼
내막 알 수 없을지라도
날 잡고 마음 가다듬어 여는
새해의 첫 날이여.
♧ 설날 아침 - 최진연
마당가 감나무 꼭대기를 비추는 햇살
그 햇살 쬐고 앉은 까치 한 마리
깍, 깍, 깍, 깍
꽁지 까딱이며 깃을 털 때마다
떨어지는 발간 햇살 부스러기들
깃털 무늬 아롱진 축복의 씨앗들.
까치와 새해 인사를 나누려는지
설빔을 차려 입은 한 아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본다.
동그래진 눈 속으로 빨려드는
하얀 봉당 끝, 하얀 마당
무럭무럭 김을 뿜으며 소죽을 먹는
외양간 지붕에도 소복 눈 덮인 풍경들
까치는 그 새 어느 집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날아가고
새파란 하늘을 인 앞산 머리 위로
아침 세수한 해가 솟아오르는데
앞집은 아직도 떡국을 안 먹었을까?
용마루가 묻힌 그 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게.
♧ 설날에 - 김경숙
댓돌 위에 신발이 늘어갈수록
신명나서 분주해진 어머니는
불혹을 넘긴 딸들 아랫목에 앉히고
준비하신 음식 내오기 바쁘시다
혼자 지내신 외로운 나날들
그동안 하고픈 말 어찌 참으셨는지
손주들 알아듣지 못하는 구수한 사투리로
지난 일들을 생중계 하신다
먼 친척 애경사며,
동네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
서울에 살고 있는 옆집 아무개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대 서사시는 밤을 밝힌다
이 밤 지새우고 나면
댓돌 위에 신발들 모두 떠나고
한 켤레 빈 공간 넘나들며
기약 없는 날을 세고 계실 텐데
밤새 내린 눈은 어머니 마음 아는지
댓돌 위에 소복이 쌓여
서둘지 말고 떠나라 일러준다
♧ 설날 아침에 - 김설하
동녘이 환해지며
먼동이 터오는 설날 아침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와
웃음꽃 활짝 피는 복된 새해 새날입니다
소복소복 쌓여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눈처럼
우리 가슴에도 순백의 폭설이 내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는 순한 마음으로
따뜻하고 정답게 살 것을 약속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을 만나도
아름다운 이웃으로 지내며
즐겁고 활기차게 살겠습니다
올해는 좋은 일 가득하시고
올해는 웃는 일 많이 생기시고
올해는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불끈 솟아오르는 저 붉은 태양의
열렬한 기운을 모두 받으셔서 부자 되세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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