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숲
졸음과 졸음 사이 내 안을 선회하는 작은 새들
절기의 연산 작용이 한참 뜨겁다
뜨거운 감각이 여름 한낮을 달구고
풀빛 향 실어 나르는 바람도 더위를 식히지 못하고
여름과 소통하는 향기나 노래 속에
나는 더위를 뭉개고 있다
나에겐 언제나 그대가 있지만
이 한나절 무엇이 나를 이토록 미치게 하는가
철 지난 기억 몇 줄
나른한 시간대에 붙들려 누운 자리
노오란 새 한 마리 느티나무 가지를 박차고
꿈결처럼 여름을 날아오른다
환상의 색조 언제 보아도 또다시 보고 싶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푸르고 푸른 깃털들
푸른 소음들을 버리고 맥없이 주저앉는
저 어느 갈 빛 어둠의 골목은 여름으로 다시 설레고
꿈을 쏘아 올리는 하늘 동동 떠가는 구름 들의 출렁임
여름 여름 코끝에 감도는 그리운 향기
엊그제부터 울기 시작한 매미들의 맹목적인 소리도
내 졸음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네
그대는 나의 영원한 레드그린 심장을 뛰게 하는 힘
그대는 내 안에 맑은 강물 항상 청결한 불루벨벳
나는 그대로 인해 웃고 그대로 인해 행복하고
그대로 인해 미소하나니
그러므로 그대는 오로지 내 영혼의 아름다운 지주
당장 배고픈 우울도 위로받는 그대는 나의 단단한 믿음
실존하지만 보이지 않고 늘 가슴 안에서나 뛰노는 어린 새
숲은 생명을 일으키는 떨리는 기적
건강한 거지
깜작새 졸음새 천국새 눈물새
내가 부르는 그리운 이름들
♧ 쇼팽의 선율과 6월의 오르가슴
6월의 골을 거쳐 바람은 푸른 잎새 들을 아우른다네
오디오에서 들리는 쇼팽의 황홀한 선율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태양은 내 지붕 위에 그리고 미지의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수리에 작열하고
자연도 무형의 꿈을 꾸는 푸르름 만 깊어진 6월
세상은 하나같이 초록 물결이라네
한적한 오후의 가슴에 가만히 누워 고요를 즐기고
나는 내 방에서도 이름없는 작은 풀꽃들을 그려 보노 라네
스치는 바람결이 차가울수록 밑변 없이 젖어드는 선율
아, 비애를 다스리는 음표 들이여
견딜 수 없는 사랑들이여
최고조의 행복의 밀물 위에 맨발로 섰나니
공명하는 벅찬 감흥의 덩어리여
알몸으로 나를 벗어 던졌나니
올림프스 신전의 웅장함도
세상을 통치하던 제우스의 신전에
재물로 뛰놀던 성욕과 바람도
지금은 외로운 그루터기만 남아 시간을 연명하나니
감성으로 불거지는 몽환의 가지마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로 인적 없는 숲의 심장에
물푸레나무로 살랑이나니 엎딘 가슴으로 살랑이나니
뜨거운 입맞춤에 젖어 황홀한 선율 속에
6월의 오르가슴이 시방은 가슴에 가득 피어오른다네
♧ 유월아 더욱 찬란해지렴
이 지친 날개 위에
끝없이 꿈꾸던 사랑을 위해
유월아 너는 더욱 찬란해지렴
화농 든 가슴은 저 홀로 곪아 가는데
살아가는 일은 상처를 무릅쓰는 일이다
살아가는 일은 수치와 모멸감 따위를
종종 견디는 일이다
뽕짝 같은 인생아
너는 더욱 미천해져서
화려한 더듬이로 너의 부했던 시간과
불운을 헤아릴지어다
방향을 잃어버린 그 어디쯤
드러낼 수 없는 역력한 진통 중에도
사산한 기억의 상처를 끌어안고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머무는 강나루에서
너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을 도돌이 칠 것이냐
♧ 그 숲의 비밀
날마다 조금씩
가슴을 여는 자는 행복하다
속을 보이지 않는
숲의 비밀은 무엇일까
때론 내리는 비도
알몸으로 적셔내는 일
따뜻한 대지를 여과 없이
받아 드리는 일
때가 되면 옷을 벗어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일
그리고 희망의
새순을 틔워 내는 일
♧ 어둠과 폭우의 숲
오늘은 하루종일 비
태양의 빛은 천만년 전에
지구로 전송되어 졌다는데
저 비는 어느 시기에 전송된 절규인가
누구의 염원으로 끝없는 색기를 뿜으며 저 비는
세상과 밤새 황홀한 욕정에 빠졌는가
한강 둔치들이 물에 잠기고
곳곳에 침수와 통제의 팻말이 무색하다
나는 나의 그늘을 본다
그리고 너의 슬픈 눈동자, 눈동자
검은 숲을 바라보며 넘쳐 흐르는 교성에
물안개 높고 낮은 산을 탐하고
어느 그리움으로 와 닿는 맹꽁이 울음소리
밤은 점점 깊어 진다
잊을 수 없던 눈빛에 습기로 젖어들던 긴 입맞춤
너를 통해 배우는 어둠과 불가항력의 저 폭우
한 자락만 펼쳐도 후두두 저 빗물은
밤을 굽이쳐 내일이면 바다를 만날까
우리는 동질감 속에 깊고 슬픈 정사를 나눈다
더러워진 영혼에 마른 줄기로 선 자리
진초록으로 범람하는 통제 불능의 환희
그러나 외로운 교감에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는 여전히 어둡다
♧ 숲속의 풍경
평온한 숲에 수리부엉이
부부가 날아들었다
식욕에 눈이 먼 그들은 날마다
그들의 먹이를 위해 독을 짓는다
야생의 먹이사슬
송곳 같은 날카로운 발톱
바람의 스침도 아랑곳없이
황혼이 곱기를 비웃고 있다
음습한 나무 굴 속 몸을 감춘 채
평화를 훔쳐내어 밤마다 빛나는
숲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빛을 싫어하고 밤을 사랑하는
먹어야 사는 가련한 탐욕
더러운 이를 탐하는
저 찬란한 독주
강한 입술로 침묵하는
숲의 맑은 정수리를 깨우는
가증스러움
숲은 침묵하여도
살아 있으므로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
밤의 얼굴 위로
그들의 발자국이 스칠 때마다
작은 새들은 심장이 떨려 포로롱 날고
갑자기 숲이 부산하게 깨어난다
동이 트기까지 사냥이 시작되고
숲은 무형의 피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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