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너무 더웠기에
솔직히 일할 의욕이 있는 날이 적었다.
9월 초하루 다시 빗줄기가 몇 번 쏟아지며
기온을 끌어내려
지금은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이 글을 쓴다.
아무래도 계절은 속일 수 없는 듯
오늘도 몇 번 선풍기를 켰다 껐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9월초의 날씨여서 그렇다.
그러나 9월이 왔으니
그 동안 밀렸던 일들
빨리빨리 처리하며,
나름 치열하게 살아보려 한다.
♧ 9월의 염원(念願) - 배혜영
삶을 사랑하며
시간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진실된 날이 많은
행복의 삶 되소서
사람이 그리우면
의지가 되는 사람이 와
사랑한다는 말 주는
향기로운 선물의 날
더욱 많아지소서
잘 익은 과일의 색
가슴에 물들듯
창가에 홀로 앉으면
가을바람에 실려온
그리운 향기에 취해
설레임에 흔들리는
노래 같은 날 되소서
토실토실 맛 드는
달콤한 시간으로
가득가득 채워지고
알찬 시간들과 함께
진정한 의미의 삶
보람과 영광으로
톡톡 여물어 가소서
♧ 9월이 오면 - 임영준
되돌릴 수 있을까
동구 밖 웅크린 그리움을
뜨거운 열정의 밤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내내 시름 하던 추억들이
잘 영글어갈 수 있을까
9월이 오면 우리
보다 깊이 스며들 수 있을까
♧ 9월은 - 유소례
타는 볕살의 불꽃이
설익은 열매에 불을 지핀다
한 줄기 노란 바람이
어정어정 잎새 물들이는 소리로
가을 문을 연다
소르륵 바람 한 조각에
유년의 색동 꿈을 실어놓고
소녀의 푸르른 사춘의 사랑을
새김질 해보는 추억들이
맑은 하늘의 뭉게구름을 탄다
삶의 자리, 가슴 깊이
사색해 보는 이 9월에
부끄러운 기억은 던져버리고
한 움큼의 구슬이라도 꿰어 보자
9월은 턱을 괴고
땡볕과 가을이 다툼하다가
화해하는 갈대처럼.
♧ 9월에 부르는 노래 - 최영희
꽃잎 진 장미넝쿨 아래
빛바랜 빨간 우체통
누군가의 소식이 그리워진다
망초 꽃 여름내 바람에 일던
굽이진 저 길을 돌아가면
그리운 그 사람 있을까
9월이 오기 전 떠난 사람아
지난해 함께 했던
우리들의 잊혀져 가는
그리움의 시간처럼
타오르던 낙엽 타는 냄새가
올가을 또 한 그립지 않은가
가을 오기 전
9월,
9월에 그리운 사람아.
♧ 9월의 약속(約束) - 오광수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 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 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우리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 9월의 단상 - (宵火)고은영
바라건대
눈으로 들어와서
가슴으로 건너는
계절의 홀씨 위에
아픈 기억의 날개는
뽑을 지어다
비상하여도
도처에 물이든
계절의 나락 하나
감사로 수확하지 못하는
마음의 불구는
소슬바람에도 흔들리나니
감당치 못할
아픔에 이르기까지
견주어 바꿀
그리움의 씨앗이 웃자라
빈껍데기로 남길 바에야
차라리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가리고
중심의 빈처로
이 계절을 노 저을지니
♧ 9월도 저녁이면 - 강연호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디카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술년' 끝자락에 서서 (0) | 2018.12.31 |
---|---|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이웃을 (0) | 2018.12.24 |
안개 낀 숲을 거닐다 (0) | 2018.08.31 |
사라호수에 떠도는 안개 (0) | 2018.08.28 |
가을 들꽃을 기다리며 (0) | 2018.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