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높은 기온과 켜켜이 쌓인 가뭄을
해소시켜 놓은 숲에 갔다.
삼나무 숲
사방은 안개로 둘러싸였는데
숲속은 오히려 트였다.
나뭇잎에서 서느런 바람이 불어와
폐부 깊숙이 쌓였던 먼지를 씻고,
덕지덕지 쌓인 더위에 대한 흔적을 지웠다.
막 익기 시작한 머루와 다래에다
격려의 눈총을 보내며
얼마 없어 피어날 가을 꽃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번 가을은 더욱 시원한 바람을 몰고
숲에서 마을로 내려올 것 같다.
♧ 푸른 숲이 되고 싶은 오늘 - 박종영
언제나 바라보면 기쁘지 않은 숲은 없습니다
숲은 한꺼번에 자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서서히 그리고 가장 근엄하게
꽃망울 몽글몽글 올라오는 봄으로 시작하여
화려한 꽃을 피워올린 즐거운 날을 거쳐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쪽빛 여름과
산의 기운이 성숙해지는 붉은 단풍
웃음소리 들리는 풍요한 가을까지,
백옥의 옷을 입고 신의 이름으로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청청하게 서 있는 겨울,
소나무의 기상을 앞세워 천년의 세월
묵언의 약속으로 사람의 마음을 지켜줍니다
숲이 허락하는 만큼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산길을 걷다 보면,
철마다 피는 들꽃들 가슴으로 받아들여
사랑꽃을 피우게 하고,
구슬처럼 대롱거리는 풍성한 상수리 열매
툭툭 빠지는 소리 들릴 때면,
산 식구 겨울 식량으로 갈무리하는 숲의 지혜를 닮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키는 소중한 숲이 되고 싶은 오늘입니다.
♧ 여름 숲 - 권옥희
언제나 축축이 젖은
여름 숲은
싱싱한 자궁이다
오늘도 그 숲에
새 한 마리 놀다 간다
오르가슴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 여름 숲 - (宵火)고은영
졸음과 졸음 사이 내 안을 선회하는 작은 새들
절기의 연산 작용이 한참 뜨겁다
뜨거운 감각이 여름 한낮을 달구고
풀빛 향 실어 나르는 바람도 더위를 식히지 못하고
여름과 소통하는 향기나 노래 속에
나는 더위를 뭉개고 있다
나에겐 언제나 그대가 있지만
이 한나절 무엇이 나를 이토록 미치게 하는가
철 지난 기억 몇 줄
나른한 시간대에 붙들려 누운 자리
노오란 새 한 마리 느티나무 가지를 박차고
꿈결처럼 여름을 날아오른다
환상의 색조 언제 보아도 또다시 보고 싶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푸르고 푸른 깃털들
푸른 소음들을 버리고 맥없이 주저앉는
저 어느 갈 빛 어둠의 골목은 여름으로 다시 설레고
꿈을 쏘아 올리는 하늘 동동 떠가는 구름 들의 출렁임
여름 여름 코끝에 감도는 그리운 향기
엊그제부터 울기 시작한 매미들의 맹목적인 소리도
내 졸음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네
그대는 나의 영원한 레드그린 심장을 뛰게 하는 힘
그대는 내 안에 맑은 강물 항상 청결한 불루벨벳
나는 그대로 인해 웃고 그대로 인해 행복하고
그대로 인해 미소하나니
그러므로 그대는 오로지 내 영혼의 아름다운 지주
당장 배고픈 우울도 위로받는 그대는 나의 단단한 믿음
실존하지만 보이지 않고 늘 가슴 안에서나 뛰노는 어린 새
숲은 생명을 일으키는 떨리는 기적
건강한 거지
깜작새 졸음새 천국새 눈물새
내가 부르는 그리운 이름들
♧ 여름 숲에서 - 박인걸
당신의 기운이 충만한
칠월의 숲속에서
아담의 이비인후의
루하흐를 경험합니다.
참 솔이 내뿜는
살균의 효능이나
떡갈나무 잎의
피톤치드가 아닙니다.
정수(淨水)된 공기와
아침 같은 고요가
찬란한 햇살과 섞여
한껏 채워지는 편안함보다
더 충만한 생명의 신비가
오염된 영혼을 감싸며
무성(無聲)의 광선으로
세속의 욕망을 녹입니다.
누구도 채워줄 수 없고
이끌 수 없는 힘이
숲속을 걷는 나의 온 몸을
강력하게 포옹합니다.
♧ 여름산 - 고명
아침나절 내린 비가 질척하게 고여 있는
숲길, 나무들의 젖은 몸에서
짙은 페로몬 냄새가 풍겨나고 있다
짐승의 거친 숨소리 울음으로 풀어내며
흐트러진 머리칼 푸르게 출렁이고 있다
한낮의 잠 속으로 노곤하게 빠져드는
알몸의 여자처럼
♧ 여름, 숲에서 살리라 - 김덕성
뜨거운 햇살을 피해
숨을 양 숲속에 깊숙이 뭍이니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푸르른 잎들
맘껏 숨을 들어 마시니
온 몸에 시진대사가 일어나
새 정기로 갈아주며
잘 오셨다고 속삭인다
하늘이 싫어선가
온 통 가린 틈새로
가느다란 햇살만이 스며들고
이따금 구름이
넘나들고
산새들은
나무사이에서 노래하는
평화로운 한마당이 열리는 숲
내 영혼이
씻은 듯 맑아지고
난 이 여름, 숲에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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