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사라호수에 떠도는 안개

김창집 2018. 8. 28. 10:00



19호 태풍 솔릭이 몰고 온 비가

사라오름 분화구에 호수를 이루었다고

지인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몇 년 전 태풍이 지나고 나서 찍은

사진을 꺼내봅니다.

 

여름의 한라산의 기후는 변화가 심해

순간 반짝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거나

안개가 삽시간에 퍼져

온 산을 캄캄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올 때 조금이라도 안개가 걷히면 찍으려고

그냥 지나갔다가,

안개로 덮이어 못 찍었다면서

물인지 안개인지 모르는 사진도 곁들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일도 그런 것 같아요.

좀더 형편이 나아지면 해야지 하고 미루어버린 일들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그래, 조금 부족하더라도

치를 일은 그때그때 치르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의 호수 - 박동수

 

호수의 물결이 인다 해도

기슭에서 기슭이니

한 눈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

 

가슴속에 묻힌 마음이야

보이기도

헤아리기도 어려워

 

용암처럼 뜨거워지는 시간

가슴 속의 호수

깊인들 넓인들

뉘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찌

호수만 넓다 하는가

   

 

 

호수 - 박인걸

 

호수에 오면 내 마음이

맑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고향만큼이나 넉넉하게

받아주기 때문이다.

 

호수는 언제나 푸근하게

하늘과 구름과 산도 품는다.

산이 저토록 아름다운 건

호수에 몸을 담그기 때문이다.

 

사납게 뛰 놀던 바람도

호수에 이르면 순해 지지만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은

아직은 일렁거리고 있다.

 

호수에 나를 빠트리고

며칠만 잠겼다 다시 나오면

내 마음과 눈동자도

호수처럼 맑아질 것 같다.

     

 

호수로 가는 이유 - 김내식

 

공기의 움직임이 바람이라면

마음의 움직임은 근심인가

어찌 하루도 조그만 내 가슴이 고요하지 못하여

풍랑이 심한 날은 나도 모르게

한적한 호수를 찾아

수면을 바라본다

 

생각은 호수의 물결인가

잔물결의 표면에 비치는 미루나무는

흐려지고 굽어지며

하늘에 뜬 해와 달도 둥글지 못하여

바람의 파장 따라 이지러져

바르게 볼 수 없다

 

이윽고 호수에 바람이 잦아들면

고요하고 평온해지게 되며

거기에는 더 이상

파장도 일어나지 않게 되어

물가의 느티나무가 있는 그대로 나타나고

그 가지에 앉은 작은 새가

눈에 보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지저귀는 소리

그것이 아름다운 시가 되고

감미로운 음악이 되어

혼탁한 나의 뇌리와 가슴

관통해 지나가면

비로소 세상이 아름답게

눈에 보인다

   

 

 

호수 - 문정희


이제야 알겠네

당신 왜 홀로 있는지를

 

손에는 검버섯 피고

눈 밑에

산 그림자 밀려온 후에야

 

손과 손이

뜨거이 닿아

한 송이 꽃을 피우고

 

봄에도 여름에도

강물 소리 가득하던 우리 사이

 

벅차오르던 숨결로

눈 맞추던 사랑

 

이제 호수 되어

먼 모랫벌로 밀려가 버린 것을

 

이제야 알겠네

물이 된 지금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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