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 3편

김창집 2018. 9. 22. 09:21


섬사람들 - 김수열

 

섬에서 나고

섬에서 자란 사람들은

바람이 말하지 않아도

섬에서 사는 법을 안다

바다 끝에 아련히 떠 있는

사람 없는 섬을 보면서

외로움보다 기다림을 먼저 알고

저만치 바람의 기미 보이면

밭담 아래 허리 기대어

수선화처럼 꽃향기 날려 보내고

섬을 할퀴듯 달려드는 바람 있으면

바람까마귀처럼 바람 흐르는 대로

제 한 몸 맡길 줄도 안다

등 굽은 팽나무처럼

산 향해 머리 풀어 버틸 줄도 알고

바람길 가로막는 대숲이 되어

모진 칼바람에 맞서

이어차라 이어차라 일어설 줄도 안다

어디 그뿐이랴

때가 되면 통꽃으로 지는 동백처럼

봄날 오름 자락을 수놓는 피뿌리풀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선연한 피를 흘리며

미련 없이 스러질 줄도 안다 


 

 

섬에서 - 김광렬

 

나 죽어서도 섬을 떠나지 않으리

둥둥 제주바다가 울려대는

북소리와 살리

한라산 들녘을 휩쓸고 가는

바람까마귀와 살리

어린 시절의 그 곱던 마음과 살리

황건적이나 도척과는

살지 않으리

풀꽃들과 살리

제주 땅 곳곳을 천둥번개 쳐가는

아픈 비명소리들과 살리

뭍에서는 살지 않으리

더더욱 높은 곳은 바라보지 않으리

희미한 등불만 있으면 좋으리

불빛 아주 없어도 절망하지 않으리

캄캄하게 캄캄하게

어둠 캐며 살아가리


 

    

제주바다 1 - 문충성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

바다가 어둠을 여는 줄로 너는 알았지?

바다가 빛을 켜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아니다, 처음 어둠이 바다를 열었다. 빛이

바다를 열었지, 싸움이었다.

어둠이 자그만 빛들을 몰아내면서 저 하늘 끝에

힘찬 빛들이 휘몰아 와 어둠을 밀어내는

괴로워 울었다. 바다는

괴로움을 삭이면서 끝남이 없는 싸움을 울부짖어 왔다.

누이야, 어머니가 한 방울 눈물 속에 바다를 키우는

뜻을 아느냐. 바늘귀에 실을 꿰시는

韓半島의 슬픔을. 바늘구멍으로

내다보면 땀 냄새로 열리는 세상.

어머니 눈동자를 찬찬히 올려다보라.

그곳에도 바다가 있어 바다를 키우는 뜻이 있어

어둠과 빛이 있어 바다 속

그 뜻의 언저리에 다가갔을 때 밀려갔다

밀려오는 日常의 모습이며 어머니가 짜고 있는 하늘을.

濟州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濟州 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幼年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겨울 날

초가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에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濟州

겨울을 빚는 파도 소리를 보라.

파도 소리가 열어 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제주작가' 2018년 가을호(통권62호) 특집1 '제주의 대표시들'에서

   *사진 위로부터  1. 최남단 마라도  2. 우도  3. 비양도  4. 가파도에서 본 제주본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