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시詩' 1월호의 시 - 2

김창집 2019. 1. 12. 22:53


낙타 한 분 - 정옥임

 

산 같은 짐을

가는 두 다리로 나르는

낙타 한 분 - 어머니

 

입술이 웃는지

가슴이 웃는지

웃을 줄이나 아시는지

 

앉을 때도 행여

짐 떨어뜨릴까 봐

고개 들고

조심조심 내려앉아

 

설 때는 넘어진

누군가 일으키려고

~

단번에 일어난다.

 

 

까마중 - 도경회

 

익은 것은 동생 주고

내 날숨은 짙은 풀내를 풍겼다

방학 끝나

난닝구만 입고 학교 갔는데

뒷내 남희도

밥풀 같은 구멍 뒤숭숭한 난닝구를 입고 있더라

큰 엉가

지금도 박꽃처럼 순한 그 애 얼굴을 잊을 수 없어

 

푸근푸근한 쌀밥을 고봉으로 올려 담은

고택의 큰 방

온습도가 잘 맞는지

흰나비로 포르륵 날아오르는 모태어

 

기우는 달을 베고

길게 어리광으로 누워

고운 빛 무리를 터트리고 있다

 

 

 

변증법 - 유진

 

의 마음상태를 두고

혹자는 텅 빈 무()라 하고

혹자는 꽉 찬 완성이라 하고

혹자는 영감의 원천이라 한다

 

아직 해독되지 않은 마음을 들고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나는

혹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퇴직 - 이주리

 

, , ,

인격 살해

또 두 발 탕,

체력이 살해당함

오늘 사표를 냈다

벼랑과 벼랑 사이

크레바스와 크레바스 사이

용하기도 해라, 심장이 건너온 길

문장의 접시 위에

타버린 의욕이 디저트로 제공된다

가을이 소리 없이 지고

책상이 유언도 없이 진다

잘 있거라 비밀번호들아

잘 있거라 자본의 아들들아

잘 있거라 청춘아

잘 있거라 추억아아아

그리고 기억의 박물관에

오롯이 보존된 유물

아마도,

 

 

 

바람이 분다 - 방화선

 

침대 위의 베개가 뒤틀린다

좌우 번갈아 접었다 폈다 감정의 폭발은 간단했다

 

비난이 내방을 건너오면

모호한 청력은 갈팡지팡 자리를 이탈하고

무표정을 연기하는 공식은 수시로 바뀐다

하필 네가 나의 상대라니

중국 변검의 흰색을 써야 하나

낡은 감정이 되살아나는 높은 코발트 빛

하늘을 끌어와야 하나

비난에 대항하는 너를 끌어낼 수 있을까

너를 정말 죽일 수가 있을까

바람의 숫자는 어디까지일까

 

감색 이불이

정화된 베개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까지

불어대는 바람은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산딸나무 - 임채우

 

산딸나무 하얀 나비 떼

마름모형 꽃이 실은 잎이라니

아파트 단지 한쪽에

산딸나무 꽃잎 지고

삐죽삐죽 돋아나고

잎 색깔 열매 맺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별나지도 않게

엷은 초록으로

   

 

 

사랑으로 말하자면 - 이규흥

 

멀리 떠가는 구름도

사랑이 그리우면

산보다 낮게 내려와

울고 간다

슬프거나 혹은 너무 기쁘거나

못 견디게 외로울 때

눈물 나지만

아무런 까닭도 없이 나는

눈물이 있다

사랑으로 말하자면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이다

   

 

 

빈집 - 정유광

 

굽은 등 기대선 채 별들을 뿌려놓아

메주 뜸 곰팡냄새 정수리에 고인 흙벽

마침내 수수깡 같은 그리움이 쌓여 있다

 

쏟아지는 별의 무게 감당하지 못하고

그믐달 기울어진 구멍 난 창호지에

세차게 바람 불어와 함께 사는 고향 집

 

곰방대 두들기던 아버지의 헛기침도

집안 내력 고인 우물 가난으로 말라버린

가족들 도란거리던 온기마저 식었다

 

골다공증 대들보가 이빨처럼 흔들리고

누옥을 떠받치던 서까래도 주저앉아

어느새 참깨 눈물이 마당에 풀어진다

 

어디서 날아왔나 봄볕 쬐는 풀씨 하나

동생 같은 애기똥풀 댓돌에 걸터앉아

빈 마당 스크럼 짜고 모로 누워 집 지킨다

 

 

                         * 월간 우리시20191월호(통권 367)에서

                                 * 사진 : 지금 한창 피어나는 제주수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