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와 사랑초

김창집 2019. 5. 10. 11:56


갇혀 지냈다기보다

세월이 흐르는 줄 모르게

누워서 지낸 지 한 달여.

 

마음대로 거동하지 못하고 귀찮으니까

차분히 생각하는 일도 싫고

오래 앉아 있지 못하니까

일도 하기 싫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이제 조금 걸을 수 있게 되니

바깥세상 안부가 궁금해

카메라를 들고 나서본다.


골목길,

몇 년 전엔 곱고 깨끗했던 사랑초가

이제 식구는 많이 늘었는데,

퇴색하고 헝크러져 있어

발길을 돌리려다가

 

어찌 보면 우리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이처럼 편한 대로

진화하는 게 아닌가 하고


몇 장 찍어다

우리5월호의 시편과 같이 올린다.

 

 

 

- 박원혜

 

선이 줄을 만들며 길을 걷는다

우리에게 보이는 선은 없다

 

그림자 세운 바닥이 힘이 되었다

`아래층 높낮이가 사라진지 오래다

가끔 습성이 된 언어들이 날선 선을 겨누고

달려든다 선의 몸집이 절벽을 오른다

 

산이 된 선의 몸집이 강과 숲을 건넌다

선과 선이 맞닿고 숲 속을 걷는 발이

바탕을 만들었다 줄로 모여들고 가끔씩

떨어지는 잎새에서 잡목의 울림이

선명한 시선을 잡아냈다

   

 

 

몸의 기도 - 정온유

 

내 몸이 한 번 씩 뒤척일 때마다

생각이 뒤척이고 마음이 뒤척이고…….

피 값에 물든 마음이

정리 되는 시간.

 

예배당 가는 길목

흐드러진 잘디 잔 바람이

 

부활의 아침을 찬양하듯 흐드러져 있다

 

봄빛을 털어내는 듯

온몸으로 부르짖는 듯.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움직이고,

과거와 미래가 하나 되어 움직이고

이 모든 세상을 끌어안고

온몸으로 뒤척인다 내가


 

 

바람의 의자 - 방화선

 

바다가 보이는 능선 끝자락

돌 의자에 익숙한 바람이 앉는다

 

빛바랜 조등 하나 수평선에 걸려

슬픔을 만드는 중

뼛가루를 삼킨 포말은

격랑으로 일어서고

입을 닫아버린 너의 언어가

내 엉킨 감정을 만진다

 

눈물이기도 하고, 회한이기도 하고,

안식이기도 한,

 

남음과 사라짐은 반비례의 일상이라고

잔잔하게 웃어 보이는 너의 언어

먼 수평선은 다시 규칙을 정한다

 

익숙한 바람에 또 파도가 인다

   

 

 

, 봄 일기 - 이순향

 

무대 위의 배우들

봄 햇살에 다투어 등장

보랏빛 조막손 제비꽃

민들레 개나리

 

외진 산길엔

꺾어진 채

퇴장당한 버드나무

겨우내 비바람에 시달리다

이제사 짐 내려놓고

허리 편다

 

파르스름 물 오른

상처투성이 팔

 

종종걸음으로

봄은

구석구석

빠짐없이 찾아왔구나

     

 

쌍가락지 - 윤순호

 

환승역,

승강기에 몰린 행렬이 길다

터질 듯 배불뚝이 가방 하나가

서둘러 줄을 잇는다

치맛자락 거머쥔 비취반지가 얼핏 파랗다

 

가을걷이 매조지고

허리끈이 걷어 올린 옥색 치마가

고속버스를 탔다

아가리 미어진 가방이 넥타이 동여매고

잰걸음 하던 날

주인 따라 고단했을 비닐봉다리가

꾸역꾸역 꽁무니를 물었다

서리태와 팥 무말랭이며

비단주머니 풀어헤친 가락지까지

땅만 파는 손구락에 가당키나 허냐,

닳아지면 아까운 게 쟈 줘라!”

짐짓

방구들 훈기만 측은히 살피던, 엄니

곱은 손가락

   

 

 

한 방울은 물의 씨앗 - 이기영

 

한순간,

가장 맑게 익었다

미련 없이 진다 


 

 

소금쟁이의 사랑 - 전종대

 

무슨 깊은 인연이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저 물 위에 떠 흐르는 바람처럼

그대 발아래 잠시 머물다 가는 낙엽이었으면 합니다

내 혼신 다하여 한번 스러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그런 사랑 말고, 스쳐 지나가는 소금쟁이 사랑처럼

사뿐사뿐 아픈 상처 하나 남기지 않고

오직 맨발로 자국 없는 사랑 나누다

이 물가 언제 그대 있었느냐 듯이

바람은 또 불어오고 거짓말 같이 또 가을은 오고

물 한 방울 젖지 않는 발바닥 아래

내 등짝 짊어진 소금 한 짐 뿌리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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