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부여 궁남지의 수련

김창집 2019. 6. 24. 15:27


지난 주 중학교 동창들과 같이 들렀던 궁남지.

사적 제135호 궁남지는 지금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서 가장 오래된 궁원지(宮苑池),

백제 무왕 34(634)에 건립한 것으로

삼국사기에 나온다.

 

능수버들이 축 늘어진 연못 주변으로

수련을 심은 연못과 연()을 심은 연못을

엄청나다 할 정도로 넓혀 놓았다.

 

아직 연꽃은 피지 않았고

여러 가지 수련과 어리연, 물양귀비 등만 피어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우리가 간 날은 수련 연못에 아주머니들이 들어가

잡초와 물풀을 제거하느라 물이 조금 흐려 있었다.

 

75일부터 7일까지 부여서동연꽃축제를 열 즈음이면

연꽃도 환히 피어날 것이다.


7월 매 주말에 열릴 연꽃 축제를 기대하며   

수련에 대한 멋진 시(詩)와 함께 올린다.    

 

 

수련睡蓮 그늘 - 洪海里

 

수련이 물위에 드리우는 그늘이

천 길 물속 섬려한 하늘이라면

칠흑의 아픔까지 금세 환해지겠네

그늘이란 너를 기다리며 깊어지는

내 마음의 거문고 소리 아니겠느냐

그 속에 들어와 수련꽃 무릎베개 하고

푸르게 한잠 자고 싶지 않느냐

남실남실 잔물결에 나울거리는

천마天馬의 발자국들

수련잎에 눈물 하나 고여 있거든

그리움의 사리라 어림치거라

물속 암자에서 피워올리는

푸른 독경의 소리 없는 해인海印

무릎 꿇고 엎드려 귀 기울인다 한들

저 하얀 꽃의 속내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시름시름 속울음 시리게 삭아

물에 잠긴 하늘이 마냥 깊구나

물잠자리 한 마리 물탑 쌓고 날아오르거든

네 마음 이랑이랑 빗장 지르고

천마 한 마리 가슴속에 품어 두어라

수련이 드리운 그늘이 깊고 환하다.

    

 

수련 - 김승기


수련이 피었다

 

터 잡을 곳이 그렇게도 없었던가

수많은 땅을 놔두고,

살아가는 세월만큼

썩어 가는 물 위에 둥둥 떠서

애 태우며 피워내는 선홍빛 웃음

땅 위에서는 결코 피울 수 없는 일인가

더러운 물에서

빛을 내는 순결

세파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과시하고픈 자랑은 아닐까

갈수록 연못은 흐려지는데

진정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사람들 사랑 가로채는 수단은 아니었을까

네가 더러워야 내가 더 깨끗해 보인다고 믿는

털끝만큼이라도 위선은 없었을까

 

모든 것을 비우며 살겠다는 마음공부

오히려 욕심은 아닌지

뒤돌아보는 여름 한낮

수련이 피어 있다

    

 

수련 - 박해성

 

재앙의 낮달 삼킨

너였구나, 오필리아!

덜 삭은 그리움이 질식할 듯 목에 걸려

불면에

부르튼 입술

오늘에야 말문 여는,

 

바람의 뒤를 쫒다

무릎 깨진 구름처럼

빈 하늘 헤매다 지쳐 절며절며 오시는가

질척한

생의 언저리

울컥 터진 붉은 울음

 


수련 - 윤꽃님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아득히 먼 미지의 심연에서

밤새 멀고 먼 인연의 두레박을

끌어올리며 달려온 것일까.

 

숨겼던 모든 비밀의 날개 활짝 펼치고

오롯이 물의 누각에 앉은

나비 같은.

 

자보랏빛 미소 머금은

열반의 향기를 본다

니르바나,

다채로운 색상 속에 담겨진 하나의 소원

하나의 소원 속에 담겨진 다채로운 열망.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비 꿈같은 삶

이 어슴푸레한 아침

빈손으로, 빈손으로

홀로, 홀로, 고요히

떠 있는 자태들이 나를 살그마니 깨우친다.

 

떠날 때는 이 모든 날개 옷

벗어버리겠지

욕심도, 아집도 뱀의 허물 마냥 고스란히

놓고 가겠지.

 

카르마,

영탑지*에 오면 언제나

몇 바퀴쯤 탑돌이를 해야 할 것 같고

수련의 사랑 이야기를 추억해야 할 것 같고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연결시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본 텔레비전

이미지의 힘은 과연 크구나.

여태까지의 수련이 과연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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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대학교 교정에 있는 탑과 연못

 


수련(睡蓮) - 심창만

 

선정은 조는 것

풀끝에서 뿌리로

졸음을 밟고 내려가는 것

내려가 맨발로 진흙을 밟는 것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차지게 뭉개내는 것

물비린내 나도록

발자국을 지우는 것

지운 얼굴 위로 물을 채우는 것

물방개처럼 허우적대지 않고

구름의 실뿌리를 놓아주는 것

오후 두시에도 순례자를 맞는 것

그의 빈 꽃받침 위에도 잠시 머무는 것

그의 친구의 꽃받침 위에도 나누어 머무는 것

이런 날은 늦게까지 하루를 놓아주는 것

 

그러나 잊지 않는 것

물마당을 쓸어놓고 어둠을 맞는 일

밤 깊은 실뿌리부터 다시 밟는 일

정수리가 환하도록

밤새 진흙을 밟는 일

진흙을 밟고

아침 끝에 올라앉는 일

    

 

물오리 일가(一家) - 손세실리아

 

  호수공원 나무다리를 건너다가 때마침 그 밑을 지나던 물오리 一家를 만났습니다 어미가 앞장 서 갈퀴발로 터놓은 물의 길을 여남은 마리의 새끼들이 올망졸망 뒤쫓고 있습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수선스러워 보이지만 묵언정진 중인 수련 꽃잎에 생채기내는 일없고 빽빽한 수풀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는 듯 보이지만 물풀의 줄기 한 가닥 다치는 법 없이 말짱한 것이 하늘에 길을 트고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들의 비행과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요

 

  왜 유독 사람이 다녀간 길 언저리에는 상처가 남는지

  꽃 지고 새소리 멎어 온통 황폐해지고 마는지

        


낙하하는 것의 이름을 안들 睡蓮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 박소연

 

  백 송이 꽃을 피운 수련은 어느덧 물에 잠겼다. 서서히 문이 열리고 있었고, 바람은 그때 태어났다.

 

  나의 이름은 피곤한 바람이다. 나는 백 송이 수련이 내뱉은 한숨이다.

 

  햇빛이 몸을 데워 비상했고, 몸 속에는 한 방울 물이 갈증을 태우고 있다. 내 몸은 지금 구름빛이다.


  나는 가볍다. 후두둑 떨어지는 적색 열매처럼 가까운 미래에 나는 돌아갈 것이다. 이마에 떨어지는 것, 얼굴에 번지는 것

 

  내게 쇄도하는 현기증. 그대 몸에 얼룩지는 오래된 바람, 흰 손길에 갇혀 나는 물 밑에 있고 나는 오므라들어 졸고,

 

  백 송이 꽃을 피운 수련은 어느덧 물에 잠겼고, 물 위를 지나던 나는 바람이요 장막이요, 그때 저기 부유하는 꽃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