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권경업의 '룽다'가 생각나는 아침

김창집 2020. 1. 5. 10:49


룽다* - 권경업

 

설산(雪山) 히말라야 사람들은

부처님 말씀을 정성껏 따릅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면서

그 말씀 전해 듣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높다라니 룽다를 내어 겁니다.

룽다는, 부처님 말씀을 판본(板本)으로 찍어

솟대 끝에 매달은 오색의 깃발입니다.

바람이 불적마다 룽다는 펄럭이고

펄럭일 때마다 자비로운 말씀은

바람에 실려 천지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

마음마저 가닿을 수 없는 머나먼 곳까지

그리하여 뭇 중생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세상 온통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하게 되라는,

어질고 착한 히말라야 사람들의 원()입니다.

한없이 하늘 맑은 이 가을 아침

아름다운 이의 글을 따라

대원사로 발길 옮기다가, 문득

바람 부는 내 가슴 깊은 곳에

깃발 하나 내어걸었습니다

무서리에 젖어, 혹 펄럭이지 않을 깃발 하나

솟대 끝에 내걸었습니다.

기러기 날아 가버린 솟대 끝에 내걸었습니다.

자꾸만 사위어가는 계절의 모퉁이

가여운 영혼 오도카니 있음을 알리는

흔들어 애타는 깃발 하나 바람 앞에 내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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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룽다 : 바람의 말이라는 뜻의 티베트어

 

           권경업 시집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도서출판 전망, 2103)에서


 

 -오름 친구들이 사라오름의 상고대를 보러 떠나버린 아침, 낮부터 있을 소소한 행사를 기다리며 책상에 앉으니, 문득 권경업 시인이 생각나 손에 잡히는 대로 그의 시집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을 꺼내 들춰보다 이 룽다에 시선이 꽂힙니다.


  한 때 히말라야 부근을 맴돌던 그는 이제 금수강산에 산재한 국립공원을 보듬는 사람이 되어 오늘도 어느 행사에 나갔겠지요? 나보다 더 술을 즐기는, 늦게 맛본 제주막걸리를 더 좋아하던 그가 ‘국립공원에서만큼은 금주해야 한다고 앞장선 걸 보면, 그의 산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