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바이러스
춘분을 하루 앞둔 밤
암호망이 털렸다
깜깜한 바탕화면에
펄펄 내리는 바이러스
연둣빛 기억장치가
꽁꽁 얼어 먹통이다
특수문자 섞어가며
이중 삼중 잠가놓고
서둘러 나온 매화가
씨방까지 얼붙어
일 년 또 공치겠구나
백치 같은
저 눈꽃!
♧ 겨울 안부
언제 어디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세요
동백 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나무는 또 오래오래
꽃을 피울 테니까
질기게 흔들리다
떨어져 얻은 자유
밟히면 뽀득뽀득
더러 향 날 거에요
지금 막
피운 여기가
눈길이라도 좋아요
♧ 없는 듯이 살다가
산목련 지네, 지네
늘어지는
춤 사 위
나무와 나무 사이 없는 듯이 살다가
이 한 봄
맨 앞에 서서
꽃불 켜고 가시네
♧ 꽃분 품은 채로
동백꽃 죽어서
물 위에 한참 머무네
이슬을 머금은 채
노란 꽃분 품은 채
연못이 봄처럼 피어
속을 환히 비추네
* 김정숙 시집『나뭇잎 비문』(책만드는 집, 2019)에서
-코로나 바이러스19가 발을 묶어버려
될 수 있으면 집에 있는 것이 속 편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1주일에 두 번씩 가는 오름 나들이
밀폐된 자동차에 4~5인씩 타고 가
자연 속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데
다시 그 차로 돌아와 음식점에서 맛있는 거 먹고
각자 헤어지는 순서다.
위험하다고 이것마저 없으면
정말 사는 재미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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