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김귀녀의 '산림문학상' 수상 시

김창집 2020. 3. 30. 12:09

 

♧ 아침풍경

 

모과나무에서 대추나무로

다시 모과나무로

아침 새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날고

 

알을 품고 있던 제비도

나도 할 수 있어

빨래 줄에 앉았다가

흘끗 둥지로 날아든다.

 

이 아름다운 아침

바람과 햇살도 기웃거린다

하늘의 바람도 소리도

청아하게 들린다

 

양귀비꽃 서너 송이

기댈 곳 없어 아찔하다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 편히

흘러내리는 아침

 

 

♧ 출렁인다

 

봄이 출렁인다

마당가 원추리 노랑 꽃대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흰 나비 떼가

출렁인다

 

마당가에서

매미채로 흰 나비 잡는다고

뛰어다니며 허공을 휘젓는 손자 녀석

해맑은 눈동자에 사박사박 꽃밭이 출렁인다

온 종일 마당도 나도

오후도 함께 출렁인다

 

 

♧ 봄날

 

대추나무에 푸른 움 트기 전

지난겨울에 잠겨

닦아내지 못한 겨울의 창틀을 닦아야겠다.

지난겨울에 쌓인 움츠림을

밖으로 밀어 보내고

그 가장자리에 봄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 놓고

오는 그이를 조용히 기다린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바람 길이 지나는 길목에서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펴고

새 봄의 푸른 춤을 추어야겠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겨울이 어서 끝나기를

새벽마다 어서 봄이 오기를

하늘로 보낸 내 기도처럼

그이도 푸르게 품어야겠다

 

 

♧ 겨울나무

 

석양을 등지고 나무가 서 있다

수피가 국수 가락처럼 갈라져있다

 

삶의 무게 이기지 못해

밤새 뒤척인 푸석한 얼굴

끙 웅크린다

 

나는 나무가 익숙하다

바람의 경계마다 가지를 흔드는 나무

 

순한 이파리를 감싸던 나무

슬픔 끝까지 참아내는 옹이진 몸

 

꽃샘추위 지나면

말씀처럼 들리는 평화로운 봄

 

눈물이 왜 따뜻한지

나는 운명처럼 묻지 않는다

 

                                *김귀녀 ‘제6회 산림문학상 특집’(『산림문학』2020년 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