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풍경
모과나무에서 대추나무로
다시 모과나무로
아침 새들이
우리 집 마당에서 날고
알을 품고 있던 제비도
나도 할 수 있어
빨래 줄에 앉았다가
흘끗 둥지로 날아든다.
이 아름다운 아침
바람과 햇살도 기웃거린다
하늘의 바람도 소리도
청아하게 들린다
양귀비꽃 서너 송이
기댈 곳 없어 아찔하다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 편히
흘러내리는 아침
♧ 출렁인다
봄이 출렁인다
마당가 원추리 노랑 꽃대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흰 나비 떼가
출렁인다
마당가에서
매미채로 흰 나비 잡는다고
뛰어다니며 허공을 휘젓는 손자 녀석
해맑은 눈동자에 사박사박 꽃밭이 출렁인다
온 종일 마당도 나도
오후도 함께 출렁인다
♧ 봄날
대추나무에 푸른 움 트기 전
지난겨울에 잠겨
닦아내지 못한 겨울의 창틀을 닦아야겠다.
지난겨울에 쌓인 움츠림을
밖으로 밀어 보내고
그 가장자리에 봄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 놓고
오는 그이를 조용히 기다린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바람 길이 지나는 길목에서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펴고
새 봄의 푸른 춤을 추어야겠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겨울이 어서 끝나기를
새벽마다 어서 봄이 오기를
하늘로 보낸 내 기도처럼
그이도 푸르게 품어야겠다
♧ 겨울나무
석양을 등지고 나무가 서 있다
수피가 국수 가락처럼 갈라져있다
삶의 무게 이기지 못해
밤새 뒤척인 푸석한 얼굴
끙 웅크린다
나는 나무가 익숙하다
바람의 경계마다 가지를 흔드는 나무
순한 이파리를 감싸던 나무
슬픔 끝까지 참아내는 옹이진 몸
꽃샘추위 지나면
말씀처럼 들리는 평화로운 봄
눈물이 왜 따뜻한지
나는 운명처럼 묻지 않는다
*김귀녀 ‘제6회 산림문학상 특집’(『산림문학』2020년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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