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우리詩》편집실 풍경 - 洪海里
여섯이 잡지 교정일을 하다
점심때가 되자
중화요리로 결정하고
음식 주문을 받는다
여섯이 다 각각이다
‘중국식 냉면 / 여연如然
자장면 / 임보林步
짜장면 / 은산隱山
해물잠뽕 / 하정下正
삼선우동 / 후조後凋
해물볶음밥 곱빼기 / 임파林波
싸구려 명주名酒인 이과두주二鍋頭酒(56% vol.) 6병
삭힌 오리알 쑹화단松花蛋 1접시’
오후의 일은 이제 다 했구나!
지딱지딱 마치고
다시 차린 뒤풀이는
한여름날의 짧은 한 장의 꿈
꿈속의 꿈이로다!
♧ 별들은 착하다 – 오형근
별은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혼자 봐야
보이기 시작해
보면 볼수록
가까워지고
마음에서 반짝반짝
그제야
눈을 뜨는 자의식
오랜만에
펼쳐진 나를 만난다!
멀리 있어야
조그마해서
반짝거려서
보듬어주고 싶은……
자의식의 등잔불에
심지를 올리는, 착한 밤
♧ 선암매 – 나병춘
산 넘고 강 건너 매향 천리 찾았더니
선암매 꽃눈들이
뜬동만동 필동말동
아직은 때 아니라고 고개만 갸우뚱
♧ 코로나 바이러스 – 이규홍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그대를 바라본다
어쩌면 수술실의 의사요
백의의 천사처럼 보이지만
코로나 입으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이 두려워
날마다 복면을 쓰고 있는 것인데
태양의 대기 바깥에서
손바닥만 한 지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빛이여,
돈이 된다면 혈안이 되어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단돈 몇 천 원의 마스크조차
사재기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마는
이 약하고 옹졸한 시대에
뚜렷한 대안도 없이
심각한 얼굴로 대치하고 있다
♧ 어둠 소리 - 한인철
늑대는 어둠을 향해 수탉은 여명을 향해
울부짖었던 사이 두드러지는 적막강산에
차고 넘치는 이야기
언제까지 들리랴
어둠을 사냥하는 전등불에
전설이 시들해진
탐욕의 응답인가
콘크리트에 혼쭐이 난 풀벌레의 난
자연산 쇠똥구리 한 마리에 붙인
현상금 일백만 원인 대한민국의 벽보
눈물이 나도 모깃불 타는 소리
콩나물 커가는 물방울 소리
지금은 잠꼬대가 되어버린 그 옛날 전설
♧ 고해 – 오명현
지하철은 고해소
고해신부는 스마트폰 안에 계신다, 혹시
스마트폰 탈을 쓰고 계시는지도 모를 일
소곤소곤 죄를 고백하는 사람
미주알고주알 죄상을 간추릴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죄의 끝을 알 수 없는 사람
가끔가다 고해신부에게 호통을 치는 사람
고해 내용을 스스로 누설하는 도무지 죄인 같지 않은 사람
보속은 받았는지 하나같이 뻔뻔한 사람들
지상의 고해告解를 좁은 지하철 안으로 끌어와서
또 하나의 고해를 만드는 사람들
♧ 나비의 半生 - 정형무
꽃무더기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것 있다
처녀귀신이 산다
상사想思로 죽은 처녀귀신은 벙어리다
한 꽃 입술에 입맞추면 그 꽃 입술 여닫으며 더, 더, 더, 떤다
시퍼렇게 질린 다른 꽃잎들이 울컥 얼굴 붉히고 날름거리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고 붉으락푸르락 꽃이 진다
꽃밭에는 비수를 문 처녀귀신들이 산다
나는 오래된 배나무 구멍 속 부러진 날개로
한 꽃잎과 더불어 웅크려 있다
*월간《우리詩》2020년 4월(통권 382호)에서
*사진 - 요즘 피어나는 봄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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