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름에 관한 시 모음

김창집 2021. 8. 19. 00:13

 

고내오름 소쩍새 - 김종호

 

꽃들이 팡팡 터지는

막막한 봄 사월

소쩍

소쩍

솟 소쩍

고내오름 청량한 새벽

그리움에 발걸음을 적십니다

 

밀항선 타고 떠난

우리 누나는

등에 업어 키운 오랍을 못 잊어

재 한 줌 돌아와서 울고 있습니다

 

옛날

옛날

그 옛날

그리움에 눈만 남은 우리 누나는

고내오름 어미무덤 발치에 앉아

오늘도 온 새벽을 울고 있습니다

 

별도봉 봄까치꽃 한희정

 

낮아서 만만한 자리 다리 오므리고 앉아

겨우내 덮고 자던 담요 그냥 걸친 채

양지녘 봄까치꽃이 까치눈을 비빈다.

 

꽃에다 슬픔을 덮는 그대 눈물은 짜디짜다

어둠을 가로질러 온 익명의 화살을 맞고

바위들 숭숭한 면상이 해조음에 묻히고,

 

별도봉 벼랑에서 자살을 꿈꾸던 꽃들,

초롱초롱 바위틈에서 문득 생각을 바꿨는지

어젯밤 투신한 별들의 푸른 속옷을 말린다.

 

송악산 염소 똥 - 이애자

 

송악산 가시바람엔

한약 냄새가 난다

 

산은 염소 똥을 먹고

염소는 산을 먹는다

 

굴러도 티 하나 안 붙을

저 성깔로 생겨서

 

쇠똥구리 집채만한

고집으로 살아온

 

험한 길 마다않고

절벽 타던 목마름이

 

바다 빛 결백함으로

송악산에 뿌린 풀씨

 

한나절 무용담으론

끝이 없을 늙은 염소

 

이 빠진 저 외뿔로

터전 닦던 내력들이

 

송악산 벼랑 끝에다

말뚝 박아놓는다

 

북돌아진오름 오승철

 

바다에 갇힌 섬보다

 

그나마 내가 낫네

 

역병 도는 이 가을날 눈치껏 오른 오름

 

북채를 들지 않아도

 

북이 먼저 울겠네

 

따라비오름에서 - 김수열

 

가을 오름길은 봄길과 달라

이대로 가면 먼 산에 닿을 것 같다

하늘문 향해 열려 있을 것 같다

길을 가노라면

섬잔대가

보랏빛 술잔 들고 뒤를 따르고

쑥부쟁이 아이고아이고 뒤를 따르고

소복 입은 물매화가 뒤를 따르고

바람 머금은 으악새

은회색 목청으로 어화 넘자 뒤를 따르고

 

길벗 말벗 술벗 있어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다

따라비오름 따라 먼 길 나서면

거침없이 흐르는 갈바람 같다

하늘 문 저편에서도

이승의 안부 물을 수 있어

마음 가득 햇살 출렁인다

 

검은 돌에 새겨진 , 혹은 - 이종형

 

살아 있었다면

큰형님뻘이었을

누님뻘이었을

아무개의 , 혹은 라고만 새겨진 위패 앞에서

 

4월 바람에 떨어져 누운

꽃잎의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습니다

 

뼈와 살이 채 자라기도 전에

죽음의 연유도 모른 채 스러지고

까마귀 모른 제삿날에도

술 한 잔 받아보지 못하며

애써 잊혀진 목숨들

 

거친오름의 그림자를 밀어낸 양지바른 자리에

복수초 노란 빛깔보다 선연한

이름씨 하나씩 꼭꼭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이 섬에 피는 꽃과 바람들,

곶자왈 숨골로 스미는 비와 태풍들

저 이름의 아이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오름 - 강덕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섬 둘레 돌아가며 이웃하여

봉긋이 터 하나씩 나누어 잡은

중산간 목 타는 비탈

울타리를 따로 두지 않아

네 것 내 것 다툴 게 없었고

남루한 살림이지만

먼 데서 찾아오면 대접할 줄 알았다

박토일망정 요부룩소부룩

질긴 뿌리 끌어안아 내통하는 사이

산을 낳고

바다를 길러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하필 모로 비껴 불었다. 불면서

늘상 노략질이었다

파헤치거나 걷어가는 데 열중이지만

그럴쑤는업따그럴쑤는업따

무자년 원혼은 안개비로 떠돌고

탯줄 사른 생존의 혈관을 묻어둔 터에

어깨 겯고 스크럼을 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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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고내오름 : 남쪽 낮은 쪽은 하가리 방면인데, 공동묘지로 되어 있다. 시인은 가까이 살며 매일 아침 일찍 이 오름을 산책한다. 못 살던 시절 일본으로 돈 벌러 간 누나를 추억하며 소월의 '접동새'를 빌려 서정을 펼친다. 2.  별도봉 : 구제주시민들의 공원 별도봉을 부두쪽에서 본 모습이다. 잘 살피면 자살터의 바위도 보인다. 시에 나오는 '봄까치꽃'은 개불알풀을 가리키는데, 이름이 좀 그렇고 일제잔재가 묻어 있다고 바꿔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3. 송악산 : 지금 정상부는 훼손되었다고 휴식년제로 묶여 있어 오름 둘레만 돌 수 있다. 한때 흑염소를 많이 놓아 길렀다. 4. 북돌아진오름 : 본래 이름은 동물오름인데, 정상부의 툭 튀어나온 부분이 북이 매달린 것 같다고 이름이 바뀌었다. 5. 따라비 : 분화구가 셋인데 억새와 가을 들꽃이 좋아 이름난 오름이다. 6. 거친오름 : 아래에 제주4.3평화공원을 품은 오름이다. 사진에는 한라산 구조물 뒤로 안개에 싸여 있는데, 밖에 비와  안에 위패에 희생된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당시 이름이 안 지어진 아기들은 같이 희생된 부모의 이름 아래에 子나 女로 새겼다. 7. 다랑쉬오름 : 주변에 4.3당시 잃어버린 마을과 주민들이 피신했다가 희생된 굴이 있다. 8. 용눈이오름 : 곡선이 아름다워 많이 가다보니 훼손이 심해 요즘 휴식년제로 묶여 못 간다. 뒤에 다랑쉬오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