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해리 시 '눈물 부자' 외 5편

김창집 2021. 8. 18. 00:18

눈물 부자 - 홍해리

 

내 몸이 물이었구나

내 눈이 샘이었구나

 

나이 들면 눈물이 흔해진다더니

보는 것 듣는 것마다 날 울리네

 

딸을 시집보내면서 울고

친구가 먼저 떠나가 울고

 

울지 말자, 울지 말자!” 하면서도

말없이 누워 있는 사람 보며 또 우네!

 

늙은 소 홍해리

 

기댈 언덕 하나 없고

비빌 나무 한 그루 없는,

 

늙은 소야, 늙은 소야

덕석도 못 걸친 늙다리야.

 

배때기를 쳐라

배때기나 쳐.

 

노랑회장저고리 입고

노량으로 노량으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소야

그늘이 없어 영혼도 빈 소야!

 

세월이 약이니까 - 홍해리

 

철석같은 약속도

세월이 가면 바래지고 만다

 

네가 아니면 못 산다 해놓고

너 없어도 잘만 살고 있느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세월이 좀먹고 세월없을 때도

되는 일은 되는 세상

 

세월을 만나야 독이 약이 될까

색이 바래듯 물이 바래듯

세월이 약이 될까, 몰라.

 

죄받을 말 - 홍해리

 

아픈 아내 두고 먼저 거겠다는 말

앓는 아내를 두고 죽고 싶다는 말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해서는 안 되는데

 

내가 왜 자꾸 이러는지

어쩌자고 자꾸 약해지는지

 

삶의 안돌이 지돌이를 지나면서

다물다물 쌓이는 가슴속 시름들

 

뉘게 안다미씌워서야 쓰겠는가

내가 지고 갈, 내 안고 갈 사람.

 

마지막 편지 - 홍해리

 

마음을 다 주었기로

할 말 없을까.

 

천금보다 더 무거운

물 든 나 뭇 잎 한 장 떨 어 진 다.

 

얼마나 눈부실까

내 주변만 맴돌다,

 

아내는 지쳤는지

다 내려놓고 나서,

 

마지막 가슴으로 찍는 말

무언의 할말없음!’

 

늙마의 노래 - 홍해리

 

아내를 병원에 두고 돌아와

그간 입었던 땀에 전 옷을 빱니다

이 옷을 아내가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또 입혀 줘야지 하며 빨래를 넙니다

아내의 껍질 같은 옷이 줄을 잡습니다

운동장을 가로지른 만국기처럼

하늘마당에 아내가 펄럭입니다.

 

 

                             * 시 : 홍해리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놀북, 2021)에서

                                                  * 사진 : 자주색달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