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꽃 1 - 김종호
어느
눈먼 마음을 뜨게 하려고
연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어느
떠도는 아이의 그리움으로
연밥
한 사발을 받쳐 듭니다
문득 찾지 않는
이의 그리움으로
꽃등 하나 걸어둡니다
♧ 연꽃 2 - 김종호
만난 적도 없는 우리
먼먼 눈짓이었나
약속한 적도 없는 우리
먼먼 기다림이었나
하릴 없이 걷다가, 문득
하가*연못이었습니다
햇살은 멸치 떼처럼 파닥이고
태곳적 숨을 쉬는 연못
유월의 하늘에 손 모으고
가슴 허한 사람들이
연등 하나씩 걸어놓았습니다
해와 달
뜨고 지는
너와 나는
무언의 약속
아무도 모르는 묵시
그리움으로 피어서
모르게 지는 꽃이여
먼 언제 내 눈짓이었나
발길 따라 여기 섰습니다
---
*하가 : 제주시 하가리.
♧ 떠나는 자 – 김종호
가던 이가
멈칫하더니
그냥 간다
들판에
누옥 한 채
휑하다
어느 지점에선가
소금기둥*이 되어
한 번은 돌아보리라
---
*소금기둥 :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아내가 두고 가는 집과 재산을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성경 이야기.
♧ 기억 속의 미루나무 – 김종호
바람이 부는 들판에
지금도 구름을 손짓하는
미루나무 한 그루 있지요
(가다 오다
내게로 오시겠죠?
가다가 지칠 때면
와서 기대세요
울고 싶을 때에도 오세요
바람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요)
큰길을 내느라
지금은 없는 나무
때로 지치고 슬픈 날이면
내게로 손짓하는
미루나무가 있지요
♧ 고향이 그립다 - 김종호
나무는 끝없이
저렇게 꼿꼿이 서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노을이 타는 저녁에
매미는 왜 저렇게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바다는 바람도 없는데
저렇게 끝도 없이
출렁거리며 있는 것일까
나무처럼 떠난 적도 없는데
구름이 심심한 하늘에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걸까
♧ 아침 처음 뜨는 햇살로 – 김종호
아침 처음 뜨는 햇살로
풀잎 위에 내리고 싶다
이른 봄 맨 먼저 달려온 바람으로
댕그렁 댕그렁 종을 울리고 싶다
한여름 미루나무 우듬지에서
매미의 태양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달빛 창가에 밤을 새우는
귀뚜라미의 소리로 떠나고 싶다
겨울바다 지친 너울에 누워
진눈깨비의 눈물로 시를 쓰고 싶다
억겁을 울어도 다 울지 못한 파도
누이야, 울지 마라
아침 처음 뜨는 햇살로
우리, 가난도 슬픔도 맑게 씻어
풀잎 싱그러운 노래를 부르며 가자
*김종호 시집 『잃어버린 신발』(푸른 시인선 023, 2021)에서
*사진 : 튤립나무(수채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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