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얻을수록 귀함이 되게 하소서
-새해의 아침
새 날(日)을 세우기 위하여
빛들이 絃琴(현금)을 켜는 아침
정갈하게 몸을 씻고
길게 合掌拜禮(합장배례) 하고 나서
새 달력의 겉장을 떼이오니
새 날들이여
얻을수록 귀함이 되게 하소서.
세월의 세상을 가노라면
하 많은 날들이
욕심을 채우는 일에 버려짐이 많사오니
自重(자중)케 하시어
잃음이 없게 하소서.
愛憎(애증)과 汚辱(오욕)의 날들에서는
참회의 눈물을 마르지 않게 하시고
기도와 정성의 말씀 한 가지
진실의 가짓대를 건져 올리게 하소서
가난과 서러움의 날들에서는
貧者(빈자)의 가슴을 치는 鐘(종)소리
희망의 푸른 餘韻(여운)을 남게 하시어
재생의 참 날이 되게 하소서.
기다림의 완성을 위하여
出帆(출범)의 닻을 올리는 아침
저 험한
고통과 외로움의 航海(항해)에서도
참고 견딤의 무거운 忍耐(인내)를 주시고
그 忍耐(인내)에서부터
얻음의 귀함을 깨닫게 하소서.
♧ 壽石(수석)
돌은 야위어 간다
깨어지는 아픔 뒤로
핏기 잃고 쓰러지는 돌
야윌수록 사랑을 받고
풀어진 근육과
맨살이 패인 傷痕(상흔)이
선명할수록 아낌을 받는 돌
돌은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저 험한 산야에 묻혀지고 싶어 한다
잘 닦여진 유리관 속이 아니라
저 오랜,
태고의 산야에 버려진 채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바람을 안고 싶어 한다
♧ 바다의 삶
바다는 숨결이 가쁘다
먼 수평선 한 걸음으로 달려와
해안을 차내고
慾情(욕정)의 찌꺼기
모두 게워낸 다음
팽팽히 핏줄 세우며
다시 달음질하는
저 傲慢(오만)한 熱情(열정)
뜨거운 것들은 식히고
차가운 것들은 녹여대는
包容(포용)의 큰 가슴 텅텅 치면서
오너라 오너라
같이 달려보자 달리는 동안
부서지고 깨어지는 오물덩어리 세상
淨化(정화)되어지는 새로운 삶을 위하여
바다는 숨결이 가쁘다.
♧ 바람의 습성
바다가 능선을 베고 누웠다
숨결도 고르게
밋밋한 허리를 안고.
바람은 몸살이 났다
진득한 여름날의 오후
파도의 흰 살을 물고
능선을 가로질러 달리고픈
바람의 성깔
다스림은 고요한 靜中(정중)에서 오는 것
바람이여
저 바다의 깊은 늪 속을
헤엄쳐 나가라
나가는 동안
그대의 습성은 누그러지리니.
♧ 파도의 잠
빗소리 모여
파도를 잠들게 하라
어둠을 풀어내고
바람은 모여
벼랑으로 올라가라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도 가라
그대들 쌓다 버린 모래성
이제 스스로 허물어지고
흔적 없이 본래대로 돌아가리니
돌아눕는 섬 곁으로
새로이 일어설 아침을 향해
주저 말고 가라
바다는
청비늘 번들거리며
육중한 몸 열어
섬을 끌어안는다.
빗소리 모여
바람을 젖게 하라
파도의 깊은 잠
깨우지 않게.
♧ 바다낚시
낚시 끝에서
바다는 늘 푸르게 웃고 있다
푸른 알몸 핥아대는 파도
지느러미를 감추며 달려 온다
잠시 밀려나는 섬
와르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부서지는 泡沫(포말) 사이로
빛발이 무지개
활시위 당기듯
높게 멀리 날아가는 빛줄기
바늘 끝에 채이는
팽팽한 중량
나는 옷깃을 여미며
먼 하늘 우러른다.
*김용길 제4시집 『서귀포 서정별곡』 (빛남시선 55, 1995)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광석 시집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의 시(3) (0) | 2022.02.02 |
---|---|
동백문학 2021년 창간호의 시와 시조(3) (0) | 2022.01.31 |
김애리샤 시집 '치마의 원주율'의 시(2) (0) | 2022.01.28 |
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의 시(2) (0) | 2022.01.27 |
오승국 시집 '아쉬운 기억'의 시(2) (0) | 2022.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