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용길 시집 '서귀포 서정별곡'의 시(4)

김창집 2022. 1. 30. 00:34

 

얻을수록 귀함이 되게 하소서

    -새해의 아침

 

새 날()을 세우기 위하여

빛들이 絃琴(현금)을 켜는 아침

정갈하게 몸을 씻고

길게 合掌拜禮(합장배례) 하고 나서

새 달력의 겉장을 떼이오니

새 날들이여

얻을수록 귀함이 되게 하소서.

 

세월의 세상을 가노라면

하 많은 날들이

욕심을 채우는 일에 버려짐이 많사오니

自重(자중)케 하시어

잃음이 없게 하소서.

 

愛憎(애증)汚辱(오욕)의 날들에서는

참회의 눈물을 마르지 않게 하시고

기도와 정성의 말씀 한 가지

진실의 가짓대를 건져 올리게 하소서

 

가난과 서러움의 날들에서는

貧者(빈자)의 가슴을 치는 ()소리

희망의 푸른 餘韻(여운)을 남게 하시어

재생의 참 날이 되게 하소서.

 

기다림의 완성을 위하여

出帆(출범)의 닻을 올리는 아침

저 험한

고통과 외로움의 航海(항해)에서도

참고 견딤의 무거운 忍耐(인내)를 주시고

忍耐(인내)에서부터

얻음의 귀함을 깨닫게 하소서.

 

 

壽石(수석)

 

돌은 야위어 간다

깨어지는 아픔 뒤로

핏기 잃고 쓰러지는 돌

 

야윌수록 사랑을 받고

풀어진 근육과

맨살이 패인 傷痕(상흔)

선명할수록 아낌을 받는 돌

 

돌은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저 험한 산야에 묻혀지고 싶어 한다

잘 닦여진 유리관 속이 아니라

저 오랜,

태고의 산야에 버려진 채로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바람을 안고 싶어 한다

 

 

바다의 삶

 

바다는 숨결이 가쁘다

먼 수평선 한 걸음으로 달려와

해안을 차내고

慾情(욕정)의 찌꺼기

모두 게워낸 다음

팽팽히 핏줄 세우며

다시 달음질하는

傲慢(오만)熱情(열정)

뜨거운 것들은 식히고

차가운 것들은 녹여대는

包容(포용)의 큰 가슴 텅텅 치면서

오너라 오너라

같이 달려보자 달리는 동안

부서지고 깨어지는 오물덩어리 세상

淨化(정화)되어지는 새로운 삶을 위하여

바다는 숨결이 가쁘다.

 

 

바람의 습성

 

바다가 능선을 베고 누웠다

숨결도 고르게

밋밋한 허리를 안고.

 

바람은 몸살이 났다

진득한 여름날의 오후

파도의 흰 살을 물고

능선을 가로질러 달리고픈

바람의 성깔

 

다스림은 고요한 靜中(정중)에서 오는 것

바람이여

저 바다의 깊은 늪 속을

헤엄쳐 나가라

나가는 동안

그대의 습성은 누그러지리니.

 

 

파도의 잠

 

빗소리 모여

파도를 잠들게 하라

어둠을 풀어내고

바람은 모여

벼랑으로 올라가라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도 가라

그대들 쌓다 버린 모래성

이제 스스로 허물어지고

흔적 없이 본래대로 돌아가리니

 

돌아눕는 섬 곁으로

새로이 일어설 아침을 향해

주저 말고 가라

 

바다는

청비늘 번들거리며

육중한 몸 열어

섬을 끌어안는다.

 

빗소리 모여

바람을 젖게 하라

파도의 깊은 잠

깨우지 않게.

 

 

바다낚시

 

낚시 끝에서

바다는 늘 푸르게 웃고 있다

푸른 알몸 핥아대는 파도

지느러미를 감추며 달려 온다

 

잠시 밀려나는 섬

와르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부서지는 泡沫(포말) 사이로

빛발이 무지개

활시위 당기듯

높게 멀리 날아가는 빛줄기

 

바늘 끝에 채이는

팽팽한 중량

나는 옷깃을 여미며

먼 하늘 우러른다.

 

 

                          *김용길 제4시집 서귀포 서정별곡(빛남시선 55, 199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