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오승국 시집 '아쉬운 기억'의 시(3)

김창집 2022. 2. 3. 00:55

 

동두천 하늘 아래 1

   -꺾인 꽃

 

꿈꾸듯 출렁이는 미군 거리의 밤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 허리에 끼고

히히덕거리는 미군병사들

우리들의 삶의 진실은 한갓

달러의 웃음거리로 환산되던

황량한 내륙의 하늘 아래

출출한 비가 내린다

 

이미 꺾여서 꽃이 된

우리들의 사랑은 결코

순탄히 흐를 수 없어서

멍든 가슴팍을 치밀어내는

거센 역류로 바뀌어 간다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로 변한 보산동 미군거리

 

동두천 하늘 아래 2

   -정지된 호흡

 

한국인 출입금지

보산동 미군거리

 

내 땅에서 추방당한

황당한 기분으로

냉랭한 가슴속을

더욱 움츠리게 했던

낯선 타자들의 거리를 무작정

터벅터벅 걸어가기엔

차마 뱉지 못할 아픔들이 밀려 왔고

 

그 야릇한 기운으로

정지된 호흡을 감지하며 나는

아무도 몰래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동두천 하늘 아래 4

   -쓰러진 풀잎

 

빈약한 얼굴에 뿌려진 미제(美製) 향수가

더욱 역겨움을 자아냈고

꽉 끼인 코트에 들락거리는 겨울바람에

민들레의 야윈 허리는

개망초처럼 휘어졌다

 

미군병사가 내뱉는 험악한 말들은

산탄총이 되어 온몸에 피멍으로 꽂혔고

동두천 하늘 아래 수많은 민들레들은

피눈물이 되어 지난날의 슬픔들을

삭여 갔다

 

그 도시에 온통 널려져

이미 쓰러진 풀잎들은

새로운 계절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

 

동두천 하늘 아래 6

    -사랑을 위하여

 

강물보다 진한 흐름이 어디 있으랴

강물보다 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강줄기에 띄워 보낸 오랜 그리움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흐르고

느닷없이 뒤바뀌는 마파람에

늦사랑은 언제쯤이면 북에 가 닿을까

 

익숙할 법도 하건만

강변 아낙들의 비릿한 한숨은

겨울 강물을 타고 어디론가

늘 떠날 채비를 하고

 

*반환 미군기지[연합뉴스 자료사진]

 

동두천 하늘 아래 8

    -한국적 슬픔

 

가까이서 멀리, 혹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시대의 아픔이 바람에 실려

능선 곳곳에 숨어 있어

바람이 연이어 바뀌어 불면

재빨리 한국적 슬픔이

날아와 박혀드는 곳

 

우리가 감지해내는

중부 내륙의 슬픔이란

동찬 냉기를 끊어 먹는 두더지마냥

남북을 서로 노려보는 상실의 눈빛

아니야, 그 서러운 시선보다

비싼 조국의 이름으로

어느새 굳어버린 비인간 지대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상가거리[한겨레신문 자료사진]

 

동두천 하늘 아래 10

   -다시 만나면

 

내 나라 내 땅에서 자유롭고자 했네

끈질기게 지켜온 땅 위에서

기름진 가락 우리의 사랑이

흐를 수 없는 메마른 지대의

슬픈 이야기

미군부대 켐프 케이시

카투사 근무 삼 년

수많은 슬픈 이야기를 보고 들었네

거의 대부분 약소국의 비애를

 

그대여, 세월이 흘러

우리가 무엇이 되어 이리저리 흐르다가

동두천 바닥 보산리에서

우연히 스칠 수 있다면

다시 만나 추억할 수 있다면

그렇게 쓸쓸했던

우리들의 ()

한국의 유행가를

더욱 슬프고 비장하게

함께 불러봤으면

강렬한 저항의 노래로

 

 

              * 오승국 시집 아쉬운 기억(도서출판 각시선 049, 2021)에서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 상가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