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인시집 '포엠만경' 10호의 시(2)

김창집 2022. 2. 13. 00:13

 

마음에 관한 연구 승 한

 

  내 마음 안에 있는데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내 육체 안에 있는데 왜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가 부릴 수 없는가 너는 누구인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누구 것인가 내 것인가 네 것인가 누구를 벨 칼날인가 칼끝인가 거기에 벤 목숨들 참 많다 거기에 참수당한 모가지들 참 많다 저것이 쓸모없어졌을 때 너는 나의 사랑이 된다 무용無用이 되었을 때 무용武勇이 된다 무용舞踊이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연약한 저것 가엾은 저것 칼 칼의 집 거룩한 칼의 손잡이

 

 

씨앗 임인숙

 

꼬옥, 붙잡으려고 한다

! 튈려고 한다

 

그 사이 튈 것은 튀밥처럼 튀고

 

남아 있는 것은

남아 있는 대로

 

나의 생명이 된다

 

 

길 문득 사라지고 장재훈

 

살다 보면

바람 때문에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구름 때문에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안개 때문에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때에는

그 땅에 귀 대고 잠깐 쉬어야 한다.

 

 

바람의 입 정재영

   -언론중재법

 

바람이 입을 닫으면

바다는 죽는다.

빈 둥지를

머리에 인 마을

별빛 쏟아지는 밤

밤보다 깊고

어두운 입은

문을 닫는다.

등댓불 찬란하게 일렁이고

닻을 올린 배는

은하수로 떠난다.

바람의 입을 연 파도

바다는 다시 눈을 뜬다.

바람의 말은 파도,

출렁거림은 바람의 말이다.

바람이 입을 닫으면

호수가 된 바다는

밤의 속살보다 부드러운

입의 죽음이다.

 

 

가출 - 최기종

 

통일이가 없어졌다

그런데 누구도 찾지 않았다

우리에게 통일이는 언약이고 믿음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

누구도 젖과 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통일이는 어디로 갔을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봄꽃들이 한창이더니

환호와 놀람과 희망을 속삭이고 손짓하더니

이어짐과 자유로움과 결집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더니

통일이의 사자후는 어디로 갔을까

 

통일이가 가출했다

그런데 아무도 속을 태우지 않았다

우리에게 통일이는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을까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 때문에 그럴까

성조기 나부끼고 촛불이 꺼져서 그럴까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통일이를 잊었다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통일이를 언약하지 않는다

순천자도 역천자도 존귀함을 떠올리지 않는다

통일이는 어디로 갔을까

통일이의 사자후는 어디로 갔을까

 

 

대초원의 별 호병탁

 

천막 안이 추워 소똥 몇 개 난로에 집어넣고

우줌 누러 문을 열자

자칫 발 헛디뎌 밤바다에 빠지는 줄 알고

양손 들어 자세를 잡았다네

땅과 하늘 경계가 없어진

끝없는 별바다에 내 작은 배는

밤새 가는 곳도 모르고 떠가고 있었네

위에도 옆에도 아래에도 별

천지사방 별비가 쏟아지네

오줌 누는 내 거시기 아래에도 별들이 깜빡이는 것을

태어나 처음 보았네

 

 

                               * 동인시집 10포엠만경(포엠만경, 2021)에서

                     * 사진 : 서해랑길 목포 유달산 경유 코스 풍경(EBS '한국의 올레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