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인시집 '포엠만경' 10호의 시(3)

김창집 2022. 2. 20. 00:46

 

꽃박람회 강상기

 

고양시 호수공원 앞 꽃 박람회장에 가서 보았다

고유의 빛을 발하며 한 동아리로 자리한 것을,

세계의 꽃들이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

화합과 평화와 아름다움을 이룬 것을,

 

저 꽃에 시선을 빼앗겨 부러워 경탄하면서

한 동아리로 자리하지 못하는 우리가

꽃이 진한 빛깔과 향기보다 더욱 시리다

 

 

고향 김광원

 

제대하고 오면서 부르려고

입대 전, ‘역마차곡에

가사도 붙이고

단양팔경 돌면서 흥얼거렸는데

평생을 흘려보내고

이제야 솟구치네.

 

아 이제야 집으로 가요.

들을 지나 풀피리 불며

나 어릴 때 뛰놀던 그곳

부모형제 그리워지네.

지는 해 찾아 잠이 들면서

떠나온 지도 어느 덧 몇 해

강을 건너 산을 넘고

새들 따라 노래하였지.“

 

숨 한 번 크게 들이켜니

달빛 절로 흘러오고

때늦은 바람결에도

설레는 마음 어쩔 수 없네.

희로애락 이슬 적시며

저 푸른 벌판 쏘다니리.

 

 

, 또 하나의 그리움 9 김양호

 

맑은 네가 기꺼이 걸어오시면 나는 젊은 섬으로 다시 태어나

 

애기동백 만개한 그 섬에서 나는 시인이 되어 취하기로 했다.

 

일상에서 상처 받아 아프고 버림받은 날들은 수평선 멀리 밀어내고

 

또 다른 나를 끄집어 낼 일이다.

 

섬길 걷다보면 때로는 바라보는 일이거나 누군가 기다리는 일이거나

 

불청객 같은 내 발자취에서 나를 풀어주는 일들은

 

갯바람과 파도 소리로 이미 나는 섬과 내통될 일이다.

 

 

바다의 기록 박윤기

 

바다는

 

관절 마디마디,

쉰 듯 젖은 듯 금관악기 소리도 푸르고

 

거세게 후려치는 채찍,

어깨 들썩이는 울음도 푸르다.

 

모래톱에 거친 파도가 새겨 논 주름살도

섬 그늘에 온종일 머물다 간 외로움도 푸르고

 

바위섬 수천만 년 부서지는 뼈도

눈물 사르어 피어나는 소금꽃도 푸르다.

 

해일이 덮치고 폭풍에 휩쓸려도

수평선 너머 달려가는 말갈기도 푸르고

 

온 해협을 휘돌다 돌아와

 

포구에 넘실대는

만행萬行*의 아린 기록도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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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면서 닦는 수행

 

 

우문현답 박관용

 

달 밝은 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를

삼단논법으로 논하시오

 

너나 논하시오

 

 

기차는 떠나고 임인숙

 

이제는 말의 의미가 없다

마음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서로의 꽃받침이 삶의 뜻이지만

한때의 그늘

한때의 햇볕

지금은 잃어버린 우산이 된

껍질의 햇볕, 껍질이 그늘

유통기한조차 껍질이 되어버렸다

 

잘려버린 기억의 빛깔 사이

꼬리의 흔적조차 흐린

추상화 속 이야기가 가끔 말을 걸어온다

 

 

                               * 동인 시집 10포엠만경(2021)에서

                                        * 사진 : 가창오리의 군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