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순선 시집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날'의 시(3)

김창집 2022. 3. 23. 00:23

 

숨비소리

 

세상이 아득할 때

숨비소리 나온다

참고 참았던 숨을 밖으로 토해내면

눈이 베롱해진다

 

세상을 사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물위로 솟구쳐 오르기 위해

물속에서 수없이 발길질 하듯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에도

있는 힘을 다해

물을 박차야 하는

 

세상을 향해 모든 것을 내려놓듯

자신을 비울 때

고요와 평온이 밀려온다

 

파도 위에

가만히 몸을 맡기며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느 슬픈 날

 

수목원을 나오다가

지친 발을 쉬려고

길가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집은 언제 문을 닫았는지

간판도 내려지고

화분엔 잡초가 무성하다

 

인생의 바닥을 치고

집기도 거두지 못한 채

쫓기듯 떠난 사람들같이

 

황망하게 떠난 그 사람

어수선한 마음에 불쑥 찾아와

멍하게 앉아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새까만 버찌 하나

또르르

내 앞으로 굴러와

말똥말똥

웃는다

 

 

 

이사

 

세 칸에서

한 칸으로

한 사람의 삶을

한 줄로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버리고 버리고

버려도

아직도 버리고 있는 중이다

티비에서 보았던

쓰레기 더미 속에 사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살림 곳곳에 묻어온

먼지

곰팡이 냄새

내 삶의 한숨과 슬픔이

기쁨과 추억이

곳곳에 배어

졸졸 따라온

이력

 

 

 

배추흰나비

 

배추흰나비

공중을 몇 바퀴 돌고

사라진다

 

어떻게 날아왔을까?

 

버려진 월동 무밭에서

만개한 꽃들

뒤로하고

홀로

 

현관문 열고

계단 훌쩍

넘어

 

 

 

표선해수욕장

 

아름다움으로

오리발 내미는 곳

 

표선면, 남원면, 토산리 주민들의

학살 장소였다.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지나가면서

역사 흔적이 지워졌다

 

아늑히 펼쳐진 모래 위를

거니노라면

신발 속으로

몸속으로 자꾸 달라붙는 모래 알갱이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입술에서

서걱거린다

 

심장들 울음소리 같은

파도소리 밀려 올 때는

우리 과거가

43 아픔이

자꾸 달라붙는다

 

 

 

정방폭포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는

두 줄기 눈물이

떨어지는 곳

한라산의 비극이

곶자왈의 상처가

중산간 마을의 아픔이

녹아내리는

 

그 아름다움 너머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학살터

높은 기정 바라보면

닭살 돋는다

 

과거에서 현재로

끊어진 길이

이어질 듯

그리운 피붙이 찾아

바다로 흘러가는 곳

 

과거에 사로잡힌 몸

고함치듯 울분을 쏟아내다가도

비우고 비우면서

손을 내밉니다

함께

손잡고 가자고

오늘도 하염없이

흐릅니다

 

 

              *김순선 시집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날(열림문화, 2021)에서

                                      *사진 : 삼지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