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2022년 봄호의 시

김창집 2022. 3. 25. 00:10

 

참 잘했다 정두리

 

이 창가에서 보면

바람에 살랑살랑 하얀 등을 보이는

자작나무 그늘이 깊어졌다

 

자작나무는 천년의 나무라는

남의 말 듣고 심기를

잘했다

 

해가 뜨기 전부터

나뭇잎은

부지런히 먼지를 털어내고

 

내 방 창문 엎에

말갛게 서서 기다린다

 

창을 크게 내기를 잘했다

마주보게 자작나무 심기를

, 잘했다

 

 

 

목련을 보면서 - 진길자

 

짓궂은 비바람 속 하얀 꽃길 열리더니

말없는 웃음으로 미소 짓고 서 있구나

빈집을

지어보는 하루

봄빛 한층 넉넉하다

 

이제 너 이울면 봄마저 가버릴라

연두와 초록 틈새 수많은 색깔 속에

그 어느

계절을 만나

웃으면서 살고 있나

 

 

 

그저 거기에 유영초

 

샛강은

그저 거기에 있다

바위와 부대끼는 여울목,

버들치가 춤추고 미꾸리와 노닐던 비릿한 기억을

모래톱에 미련 없이 파묻고

모두가 제 갈 길 가더라도

샛강은

그저 거기에 있다

누군들 바다 꿈꾸지 않으랴만

굽이굽이 실개천

산들산들 실버들에 낚이는

아이들의 예쁜 꿈만으로

샛강은

그저 거기에 있다

 

 

 

산자락 돌배꽃이 홀로 핀 봄밤 - 김내식

 

겨우내 혹독한 시련을 겪은

돌배나무가 살아남아

 

하얗게 꽃 피워 달밤에 웃는 뜻은

하늘에 대한 감사의 표시

 

수술이 밖으로 멀리 나와

바람에 손 모우며 기도한다

 

꽃이 하르르 떨어진다고

조금도 아쉬워 말라

 

꽃 진 자리 새잎 돋고

작은 열매 대롱이며 까르르 웃고

 

이렇듯 세상은 모두가

스스로 아름다운데

 

그대는 무엇이 불안하여

이 좋은 봄밤에 뒤척이는가

 

 

 

언젠가는 김학균

 

석양빛 아스라이 먼 강

추억이 샘솟는 정원에 앉아

기억의 강에 소비뇽 향을 뿌리면

 

흐르던 회상 서정의 빛 따라

그려낸 겹겹 숨겨진 고뇌들은

여울목 소용돌이처럼 방황하고

 

정에 지치고 꽃길도 멀리 있어

시달리면서 다시 일어나 걸어온 길

온 힘 끝까지 다한 긴 그림자

 

언젠가는 가슴으로 안아 들고

그 길이 내 길이고 내 존재였음을

사랑하는 그런 날 오지 않을까?

 

 

 

, 날다 - 이명

 

땅콩 밭을 뒤덮은 풀을 뽑는데 왜 그대가 생각나나

 

울타리 너머로 멀리멀리 던져 버리는데

너풀거리며 공중을 날아가는 풀

 

산중 깊숙이 들어앉은 몸이

씨 뿌리지 않았다고 항변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움도 거추장스러워 남김없이 뽑아 던진다

 

풀은 밤마다 억세게 자라나는 어둠처럼

몸속에서도 무성한데

풀을 걷어내니 눈동자가 빛난다

 

샛노란 저, 눈빛

 

, 그거 아니

풀이 어둠이라는 거

날려버리면 날아간다는 거

 

 

                      * 산림문학2022년 봄호(통권45)의 시